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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Feb 20. 2020

따뜻한 말 한마디

군대 신병 시절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 내무반에 들어간 날을 잊지 못한다. 오자마자 입대 3개월이 빨랐던 일병 선임이 갈구기 시작한다.

“야. 왔으면 빨리 일해야지. 오늘부터 너는 내 말 잘 들어라. 안 들으면 밟아버린다!”

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지...화장실과 내무반 청소부터 빨리 하라고 재촉한다. 걸레를 던지면서 빨리 빨아오라고 난리다. 짐 정리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걸레를 빨기 시작했다. 침상 구석구석 잘 닦는지 옆에 서서 감시까지 한다.

“잘 닦아! 고참들 운동 끝날때까지 광나게 잘 닦아. 먼지 하나라도 있으면 한 대씩이다!”

상병 진급시까지 후임병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고참과 1년을 같이 있으면서 내 마음은 피폐해졌다. 훈련이나 작업이 끝나고 내무반에 들어와서도 잡일이 끝나지 않았다. 고참들의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했다. 다 돌아가면 하나하나 건조대에 널어야 했다. 고참들이 배고프면 자다가 일어나서라도 라면을 끓였다. 같이 도와주지도 않고 욕과 고함을 치며 나쁜 말만 하는 그 선임병 옆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참들이 다 잠들고 나서 몰래내무반을 나와 가끔 하늘을 보고 눈물 흘린 적도 있다.

가끔 고참들이나 나에게 온 편지를 받으러 포대본부를 갔다. 포대본부 행정병 선임이 있었는데, 여러 후임병들이 그를 좋아했다. 솔선수범했던 그의 장점은 말을 참 따뜻하게 하고, 후임병들의 고충을 잘 들어준다는 점이다. 편지를 받고 나서 항상 커피를 손수 타주며 근황을 묻는다.

“요새도 많이 힘들지? 그래도 군대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 조금만 참고 힘내.”

그 말 한마디에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그가 참 고마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가 상병 5호봉때 다른 비행단으로 전출을 가게 되면서 그 맞고참과 떨어지게 되었다. 전출 가기 전날까지 그는 나를 말로 괴롭혔다. 포대본부 행정병 선임과 참 비교가 되었다.

몇 번의 이직 끝에 다닌 회사에서 또라이 전무를 만났다. 출근하면 일단 자기 방으로 불러 전날 회사 업무 결과를 물어본다. 진행사항을 보고하면 갑자기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야! XX야. 내가 그걸 그렇게 하라고 했냐? 아이큐가 금붕어야?”

“어제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조치했고, 공무원도 오케이한 사항입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 증거 있냐? 이 새끼가 거짓말도 하네.” (또 말 번복할까봐 폰으로 녹음했다.)

“거짓말 안했는데요.”

갑자기 내 옆으로 무엇인가 날아갔다.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난다. 재떨이가 떨어지는 소리다. 속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이 머저리야!”

하루도 거르지 않고 2시간 동안 욕과 육두문자를 써가며 사람을 괴롭혔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 딱 두 달만 다니고 사표를 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을 웃고 울게 한다. 세상을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 문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 말이다.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나쁜 말을 쓰다보니 오해가 생긴다. 커진 오해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따뜻하고 좋은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루종일 직장업무에 시달리다 퇴근한 남편에게 아내와 아이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피곤을 잊게 만든다. 독박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큰 위로가 된다. 업무실수로 괴로워하는 후배에게 차 한잔 타주면서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당신의 한 마디도 큰 힘이 된다. 부디 이 삭막한 세상에서 서로 싸우지 말자.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 지내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오늘 바로 옆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당신!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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