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시절 이모가 키우던 치와와와 마르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때가 1994년 이맘때쯤으로 기억한다. 원래 개를 무서워하고 싫어해서 개를 키우는 것에 무지 반대했다. 그러나 여동생이 너무 키우고 싶다고 했고,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한번 키워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어서 이름은 ‘아지’라고 지었다. 강아지에서 강만 빼고 불렀는데, 어감이 좋아서 계속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꼭 모습이 영화 <그렘린>에 나오는 기즈모처럼 생겨서 정말 귀여웠다. 하는 짓도 애교도 많아서 개를 싫어했던 나도 점차 아지를 아끼게 되었다.
항상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아파트 현관까지 오면 늘 문앞에 나와 짖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피곤해도 아지를 보는 낙으로 살았던 것 같다. 대학에 올라가고 나서도 술을 먹고 늦게 와도 늘 반겨주었다. 가끔은 화가 나서 아지를 발로 차기도 해서 참 미안하기도 했다. 군대에 가고 나서도 몇 달만에 집에 오는 나를 늘 먼저 알아봐주는 아지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아지도 나이를 먹어갔다. 사회생활을 하고 30대가 되고 결혼하고 따로 살게되어 정든 아지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아지의 나이가 18살이었다. 개의 수명이 보통 15년 전후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지는 벌써 사람으로 따지면 노인의 나이다. 벌써 눈이 하나 멀었고 다리는 뒷다리가 힘이 없어 세 다리로 절룩거리며 걸었다. 배설물도 아무데나 싸고.. 개도 치매가 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와 동생, 아버지는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결국 아지를 관리하는 것도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이것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신 모양이다.
결국 가족회의를 한 끝에 아지를 안락사 시키기로 했다.
따로 살고 일이 바빴던 시기라 여동생과 매제, 아버지가 가서 주사를 맞히고 안락사 시켰다. 죽어가는 아지를 보며 여동생은 엄청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고, 안양천변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매제를 통해 전화를 받고 나서 그날 밤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엄청나게 울었다.
“아지야.! 아지야..!”
그렇게 가족을 한 명 떠나 보내는 것처럼 너무나 슬프고 공허했다.
시간이 지나고 아지가 있는 안양천변에 잠깐 들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지가 그립다. 18년을 같이 살았던 식구가 떠난 것과 같으니.. 이 맘때쯤이 되면 아지가 많이 보고싶다.
저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지? 보고 싶다..아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