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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r 15. 2020

나는 강박증 환자였습니다.


“아, 내일 인허가 건 협의로 공무원이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또 난리 치는 거 아냐?”      


몇 년전 다녔던 전 회사에서 서울의 00구 발전계획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거의 한 도시의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수준이다 보니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일 양에 비해 실제로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이 적었다. 그보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 발주처 담당 여성 공무원이다. 어디서 갑질하는 법을 제대로 배워왔는지 인신공격은 기본이고, 사람 감정을 아주 제대로 건드렸던 악질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매주 수요일 오전에 일주일 동안 수행했던 계획(안)을 보고하는 주간회의가 열렸다. 회의 시작과 동시에 그 여성 공무원의 욕이 시작된다.      


“이게 일주일동안 한 계획(안)이에요? 대체 뭘 해온거야? 내가 하라는 것은 하나도 반영되어 있지 않고.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다 때려쳐! XX siki 들아!”

“아! 그게 아니라 일단 말을 좀 들어보고 뭐라 하셔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몇 주동안 참다못한 나와 사수는 맞받아쳤다.     


“그럼 내가 당신네들 회사 사장님께 전화해요? 을이 갑한테 대든다고? 시키면 시킨대로 하라고.”     


사장한테 전화한다는 한마디가 또 발목을 잡는다. 군말없이 그 욕을 다 먹고 다음주까지 해야 할 일을 잔뜩 쌓아들고 사무실로 복귀한다. 그때부터 강박증이 심해졌다. 머리는 계속 아프고, 그 공무원이 또 뭐라고 할지 불안했다. 며칠 밤을 새서 완벽하게 준비를 해갔는데도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고 또 지랄하기 시작하는데, 정말 미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여기서 강박증이 도대체 무엇일까? 네이버 건강백과에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떠올라 불안해지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질환”이라고 나와 있다. 즉 그 공무원에게 욕을 또 안 먹기 위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밤새 일을 한 것이다. 강박증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원치 않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생각이 내 의식을 계속 사로잡고 떠나지 않는다. 

2)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떠올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3) 불안이나 두려움, 위험에 빠질 것만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4) 강박증을 조절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내 의지대로 제어하지 못하게 되어 심한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3개월 동안 매주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수요일 오전에 주간회의가 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또 어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욕하고 갑질할 그 공무원을 생각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위험에 빠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4)까지가 다 해당되었다. 그래도 내가 맡은 프로젝트이고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 다음날 회의를 가야 하는데 너무 가기 싫었다. 그 스트레스에 야근하다가 부사수와 술을 먹고 뻗어버렸다. 일어나보니 회의에 늦게 되었다. 앉자마자 돌아오는 건 역시 그 공무원의 폭언과 욕이었다.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이젠 미련없이 이 회사를 그만둘 생각으로 여성 공무원에게 쌍욕을 날렸다. 오히려 그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세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준비해간 도면을 그녀 얼굴로 던지고 사무실로 복귀 후 사표를 냈다. 그때까지 그런 강박증도 같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강박증은 더 심해졌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두려웠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하기도 전에 실패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업무로 발주처와 공무원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하루종일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통이 너무 심해 결국 정신과를 찾아 몇 달간 의사와 상담받고 약을 먹고 나서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얽매이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공무원과 한 두 번 부딪히고 정말 힘든 상황이었다면 미리 회사에 상의해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는데. 맡고 있는 프로젝트 담당을 교체해 달라거나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는 등의 방법 같은 것 말이다. 어떤 일이든 항상 담당하게 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이 강박증의 시작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자기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이 옳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일상까지 파괴할 정도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면 잘못된 일이다.     

 

일뿐만 아니라 사랑, 관계에 있어서도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관계가 끝나면 어떡하지? 하면서 지나친 망상을 했다. 그 강박증 자체가 집착과 같다. 버려야 편해지는 것을 몰랐다. 강박증이 병이라는 것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강박증에서 더 벗어나기 위해서 읽고 쓰는 방법을 선택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제대로 보면서 마음도 내려놓기 시작했다. 무엇이 꼭 되어야 하고, 해야 하며 가져야 한다는 욕심도 같이 버렸다. 있는 그대로 나를 마주하고 지금 내 앞에 닥친 일들만 신경쓰기로 했다. 하지만 성향상 다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가끔 강박증에 시달릴 때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참 내가 예민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이제라도 더 편하게 놓아두고 살자.      


“너무 신경쓰지 말자. 자꾸 놓고 버리는 연습을 하자. 그러면 인생도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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