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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y 10. 2020

결국 두 번 다녀왔습니다


“정말 운이 없구나. 거길 또 가다니.”

“몸조심해라. 나이 어린 고참이 많을텐데 갈구어도 참고.”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나는 아무말 없이 듣고 있다. 그냥 술만 홀짝홀짝 들이킨다. 

이 무슨 생뚱맞은 상황이란 말인가? 제대로 다녀온 내가 기록이 사라졌다고 다시 가라는 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다.      


“2019년 5월 31일 병역법에 의거하여 현역병으로 (재)입영할 것을 통지합니다.”      


내 눈앞에 입영통지서에 쓰인 문장이 제대로 보인다. 괄호로 해놓은 “재”자가 유난히 잘 보인다. 이런 제길. 1999년 5월 31일에 22살에 다녀온 그 곳을 20년이 지난 지금 또 가야 한다니 말이 되냐고!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있는 가장이 다시 가는 건 못봤는데. 이건 정말 꿈일 거라고 여기며 볼을 손으로 꼬집어 보지만 아프다. 아악!      


그렇게 시끌벅적한 두 번째 환송회도 끝났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도 사표를 냈다. 아내와 아이들, 부모님과 장인어른에게도 잘 다녀오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직접 만나지 못한 지인과 친구들에게도 문자로 작별인사를 했다.      

훈련소에는 혼자 가기로 했다. 한 번 다녀왔는데, 두 번 가는 길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했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훈련소 정문까지 가는 시간이 정말 1년 같았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정문에 도착했다. 나처럼 재입대한 사람이 있을지 찾아봤다. 정문을 지나 운동장에 가니 커다란 표지판이 보인다.      


“재입대하는 분들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뭔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그래. 나 혼자 두 번 오는 게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나 말고 얼마나 더 있을지 궁금했다.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스캔하며 몇 명인지 세 보았다. 한명 두명 세명.... 지금까지 온 사람만 해도 20명이 넘는다. 다행이다.      


소집시간이 다 되었다. 조교가 모이라고 손짓한다. 예비군은 기억도 안나고, 민방위도 끝난지 오랜 민간인이 다시 입대라니. 나처럼 재입대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아주 아니꼬운 표정이다. 조교 한명을 불러 물어본다.      


“재입대 사유가 뭐요? 어린 조교 양반”

“조교한테 반말을 합니까? 여러분들은 기존 병역사항이 일부 지워져서 복무기간이 확인되지 않아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야! 전역증도 지금 가지고 있는데, 무슨 기록이 누락되냐? 병무청 관계자 당장 나오라고 해.”

“그건 저도 모릅니다. 기존 전역증에 적힌 기간도 위조한 거 아닙니까?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있어! 전역증을 위조하는 사람도 있냐? 어떻게 기록이 없어지는데!”

“야! 이제 다시 훈련병이 될 놈들이 뭐가 이렇게 말이 많아? 똑바로 줄 안 서?” 

“뭐? 이 XX야? 여기 부대장 나오라고 해.”     


갑자기 조교가 어디를 뛰어간다. 5분 뒤 한 무리의 조교 무리가 몰려온다. 아까 질문했던 나를 포함한 재입대자 3명을 부른다. 앞으로 나가기 무섭게 갑자기 둘러싸더니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한다.      


악! 아파! 왜 때려? 말로 해.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러다 죽는구나....아아아악!      


“아빠, 왜 그래? 어디 아파?”


주위를 둘러본다. 온 몸을 만져본다. 식은 땀만 난다. 맞은 흔적은 없다. 

뭐야. 이 상황은.  옆을 쳐다보니 첫째 딸이 신기하듯 쳐다본다. 또 꿈이다. 개꿈이다. 

결국 훈련소까지 두 번 다녀왔다. 왜 자꾸 군대 가는 꿈을 꾸는거지? 진짜 가는 거 아니겠지? 

      

#결국두번다녀왔습니다 #군대 #입대 #전역 #인생 #book #자기계발 #에세이 #단상 #황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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