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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y 17. 2020

어느 할머니의 야채 노점상

  

“아저씨 오늘 나온 상추야. 싱싱해. 한 묶음에 2,000원에 줄게!”     


오래된 세월이 말해주는 듯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가 상추 한 묶음을 들고 나에게 소리친다. 그녀는 지하철역 3번 출구에서 바로 나오자마자 보도 구석에 여러 야채를 펼쳐놓고 있는 노점상의 주인이다. 퇴근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 출구에서 나올 때 마다 매일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요리를 좋아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서 어떤 야채가 싱싱한지 볼 줄 모른다. 항상 그냥 모른체 지나갔다.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그냥 지나가기도 뭐한 상황이다.      

“할머니! 많이 파세요.”

“아저씨.. 하나만 사가.”

“죄송해요. 집에 가면 아내가 미리 장을 본 게 있어서 또 사기가 애매해서요.”

“그래도 하나만 사줘.”

“죄송해요.”

“우리 손주 밥값 벌어야 돼.”

“손주요? 용돈도 아니고. 밥값이요?”

“하나 있는데 부모가 없어. 아빠는 죽고 엄마는 도망갔고..”

“아...... 네. 여기 상추 한 묶음과 오이 몇 개 주세요.”

“다 합해서 만원이네. 고마워. 아저씨.”     


뜻밖의 대답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던 나는 할머니의 손에 만원을 쥐어주고 얼른 일어났다.상추 한 묶음과 오이는 받지도 않은 채. 다시 한번 머리가 아프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인생은 이렇게 하나같이 다를까? 할머니와 손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만 낳아놓고 책임지지 않는 그 부모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 이후로 가끔 할머니의 야채를 구입했다. 나도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매일 조금씩 사 드리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다. 작년 가을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나이도 있다보니 힘드셔서 안 나오시는 줄 알았다.      

‘그동안 우리 할머니의 야채를 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며칠 전 퇴근 후 지하철역 3번 출구에서 나오는데, 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보자마자 짐작했다. 저 친구가 할머니의 손녀라는 것을. 가자마자 학생의 손에 만원짜리 하나 쥐어주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는 그녀에게 그간에 있었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런데 할머니가 안 보이시던데 어디 편찮으세요?”

“네. 원래 지병이 있었는데 노점상을 하시다가 악화되서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부의금 명목으로 은행에서 조금 더 돈을 찾아 그 학생에게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직 미성년자인데 혼자가 돼서.”

“엄마와 연락이 되어서요. 감사합니다.”

“아....네.”     


엄마라는 사람. 진작에 자기 딸 좀 데려가지. 할머니는 죽는 그날까지 고생만 하신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날따라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할머니, 그 곳에서 마음껏 행복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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