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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y 19. 2020

나는 아빠의 자격이 있을까?


“아빠! 얘들아. 이 게임은 이렇게 해서 하는 거야.!”     


지난 주말 둘째 아들의 7살 생일선물로 보드게임을 선물로 샀다. 뒤늦게 교회에 다녀온 첫째 딸이 보드게임 포장을 뜯고 매뉴얼을 꼼꼼히 읽고 나와 둘째에게 설명하는 중이다. 나도 모르게 딸이 보던 매뉴얼을 가로챘다.      

“아빠! 왜 그걸 가져가? 아. 짜증나. 아빠가 보고 설명해. 나 게임 안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아빠는 왜 내 이야기를 끝까지 안들어?”      


갑자기 화를 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던 나도 갑자기 욱했다.   

   

“너 아빠한테 지금 화내고 그렇게 그냥 가는거야?! 무슨 말버릇이야?”     


게임을 하기 위해 즐거웠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생일을 맞은 당사자인 둘째는 어리둥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는 뛰어다니기 바쁘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한다.      


“당신 몰라? 지금 사춘기가 오는 거 같아. 조금만 뭐라해도 반항하는데. 보니까 당신이 아이의 말을 끝까지 안 듣고 잘랐으니 화를 낼만도 하네. 맨날 경청하라면서 왜 본인은 안하냐?”     


아차 싶었다.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방에 들어가 이불 뒤집어 씌고 누워있는 첫째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같이 게임을 하자고 했다. 딸은 싫다고 한다. 아빠랑 동생 둘이 하라고 소리친다. 하긴 내가 화를 내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미안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시간을 두고 아이의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데.      

그런데 나도 참 답답한게 그냥 잊고 다른 일을 하면 되는데, 자꾸 딸이 나에게 자기 할말 다하고 화를 내며 자기 방으로 간 행동이 괘씸했다. 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숨을 깊이 크게 한번 쉬어본다. 30분이 지났다. 다시 딸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대답이 없다. 또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고 아빠가 사과하는데 왜 안받아주냐고 소리쳤다. 아이가 마음을 추스르고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또 참지 못했다. 짧은 순간에 강한 압박을 준 것이다.      


아내가 나를 데리고 가서 설명한다. 대체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그렇게 훈육하면 영영 딸이 아빠에게 입닫고 이야기 안 할 수 있다고. 조곤조곤 설명하는 아내의 말을 듣다보니 어릴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에게 한마디 안지고 대들었던 내가 첫째 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얼굴이 확 달아오랐다. 부끄러워서. 내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딸도 나를 많이 닮지 않았을까? 11살의 나도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맞고 컸는데, 지금 11살의 딸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나도 어린시절 그렇게 행동했으면서 부모가 된 지금 내가 나와 같은 행동을 딸에게 혼낼 자격은 있는걸까?     


직장일도 바쁘고 독서와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못 보낸 건 인정한다. 단 30분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놀아주고 했어야 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건너뛰는 게 일이었다. 마음은 놀아줘야지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형국이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려고 노력하는 아빠지만, 그렇게 살갑지 못하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아빠의 권위는 세워주지 않는 것 같았다. 첫째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잘 챙겨주지 못하다보니 어색한 면은 있는 건 사실이나, 근래 남는 시간에는 나름대로 둘이 책과 게임의 코드가 맞아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했다. 나부터 가끔 예민해지면 분노를 조절 못하는 아빠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어떨까? 당연히 같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짜증을 많이 낸다. 나는 과연 아빠의 자격이 있는걸까? 깊어가는 밤에 생각이 많아진다.      


육아는 여전히 서툴고 어렵다. 다시 한번 아빠의 자격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사랑과 공감으로 다시 다가갈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그 전에 내 컨디션부터 잘 챙겨서 계속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좀 더 너그러이 받아줄 수 있으니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첫째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가 너의 이야기를 앞으로 끝까지 듣고 이야기하도록 할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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