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언어들 – 김이나
약 10여년 전 다닌 전 회사에서 한창 야근할 때 듣던 노래가 아이유의 <좋은날>이다. 3단 고음으로 유명했지만, 난 이 노래의 가사가 참 좋았다. 좀 유치하긴 하지만 한 여자가 오빠를 좋아하게 된 마음을 잘 표현했다. 이 노래의 작사가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김이나 작사가다. 예능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패널로 자주 나와서 방송인으로 아는 사람도 많지만 300여곡이 넘는 히트곡의 가사를 쓴 어마무시한 실력자다. 외모도 웬만한 연예인을 뺨치게 생겼다. 외모와 실력을 두루 갖춘 그녀가 쓴 두 번째 에세이다.
첫 번째 책이 작사가로의 글이 많았다면 이번 책은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관계, 감정, 자존감 등에 대해 일상의 언어를 골라 잘 풀어내고 있다. 역시 작사가 답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세련되게 잘 표현한 것을 보고 감탄하며 읽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우리, 마음껏 실망하자. 그리고 자유롭게 도란거리자.”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그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다. 그렇다 보니 일일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한동안 사람을 피한 적도 있다. 이제는 좀 실수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을 이유는 없다.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꽃을 보고 드는 반가운 마음은 이것이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고,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도 쏜살처럼 빨리 사라져버림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 유한성을 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구절은 몇 번이고 읽었다. 소중하다라는 말은 저자의 말대로 과거형에 가깝게 쓴다. 소중하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잃어버리거나 헤어지게 되면 그제서야 빈 자리를 실감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특히 연인, 배우자 등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언젠가 이별할지 모르니까.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어리석음은 더 이상 하지 말자.
“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 생각에 갇혀 잠 못 이루는 밤, 긴 숨을 쉬어보자.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만 집중해보자. ‘나는 숨을 쉬고 있다. 이렇게 잘 살아 있다. 걱정에 빠진 나를 구원하기 위해, 가만히 숨을 쉬며 누워 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다음, 주인공을 위한 최선의 다음 화를 써내려가는 거다.”
꽤 오랫동안 내 인생에서 나는 뒷전이었다. 나보다 남에게 잘보이는 인생을 살았다. 내 기준이 아니라 남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늘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살다가 나 스스로도 챙기지 못하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읽고 쓰는 삶을 통해 내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무대에 비바람이 몰아쳐서 무너진다 해도 주인공은 어떻게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성숙, 공감, 미안하다. 찬란하다, 싫어하다... 등등 일상에서 흔히 쓰는 보통의 언어들을 김이나 작사가만의 차분하고 담담하며 세련된 필체로 잘 풀어냈다. 1979년생으로 비슷한 세대다 보니 어린시절의 그녀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어쩌면 흔히 보는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사건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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