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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Dec 25. 2017

크리스마스의 악몽

2007년 12월 25일 딱 10년전 크리스마스는 잊지 못하는 날로 기억한다. 
그 해 나는 애인을 만들기 위해 소개팅을 자주 했다. 잘 되어도 2~3달 짧게 만나는 게 두어번 있었다. 아마도 내 나이 30살에 다른 것이 마음에 들어도 바쁜 설계회사에 다니면서 박봉인 내 조건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을에 또 짧은 만남을 끝이 났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크리스마스에 혼자 지내는 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친구의 소개로 4살 어린 직장인과 철산역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만나는 날이 크리스마스 당일이다. 그 친구도 일이 바빠서 약속 날짜를 잡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는 건 더 싫어서 당일은 시간은 괜찮다고 해서 저녁에 동네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초면에 고민하다가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카드와 곰인형을 사가지고 갔다. 곰인형을 샀던 이유는 사전조사때 주선자가 인형을 좋아한다고 알려주어서 그리 했다. 
   
약속시간은 저녁 6시였다. 겨울이라 금방 어두워져서 나는 일찍 서둘러 커피숍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6시가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안 오는 건 아니야?’ 순간 무서웠다. 내 생애 딱 2번 만나자고 하고 바람맞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안오는 게 두려웠다. 6시 30분 정도 되니 긴 생머리의 그녀가 온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최대한 얼굴 근육을 펴고 웃는 모습으로 그녀를 반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네..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이 아니야.. 30분이나 늦었어..)
“네! 괜찮아요. 뭐라도 드시죠. 커피 드실래요?”
“아니요.. 전 커피를 못 마셔서요. 녹차로 마실게요.” (오.. 커피를 싫어하는.. 의외..)
   
그렇게 호구조사를 하면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공감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 남녀가 가장 잘 맞는 건 영화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어색했던 분위기가 밝아진다. 일단 차를 마시고 자리를 옮겼다. 청순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먼저 
   
“소주와 감자탕은 어떠세요??” (보기보다 호탕한데..)
“좋죠!! 콜!”
   
감자탕 2인분과 소주 1병을 시켜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왜 혼자냐라는 질문부터 편한 이야기로 분위기는 좋아졌다. 그러다가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고 하면서 카드와 곰인형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확 달라지면서
   
“아니! 내가 고등학생과 20살 대학생도 아니고 무슨 곰인형을 주세요!!”
“아니...그게 아니고 주선자가 인형을 좋아한다고 해서... ”
“그렇다고 내 키 반만한 곰인형을 주시면 어떻게 들고 가라고...”
“택시 타고 가시면 되는데....”
그 한마디가 치명적이었다. 그랬다. 30살이 되도록 나는 내 차 한 대가 없었다. 
곰인형을 들고 택시타고 집에 가라고 하다니! 분위기 좋을 때 집에 바래다 주지는 못할망정...
순간 멍하고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그녀는 인형도 놓아둔채 나가버렸다. 
나는 곰인형을 들고 집에 왔다. 그 곰인형은 여동생에게 주고,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2007년의 크리스마스는 나에겐 최악의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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