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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Dec 30. 2017

아직도 떨고 있니?

대학 4학년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그해 12월 30일 새해 첫날인 동기 생일잔치와 망년회를 겸하여 종로에서 대학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남녀 할 것 없이 20명 정도 동기들이 모였다. 종각과 종로3가 사이 술집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꽤 오랜 시간을 시끌벅적하게 놀다보니 지하철 막차도 놓치게 되었다. 
     
회비를 걷고 남은 돈은 여자 동기들 택시 태워서 보내는데 다 써버렸다. 아직 학생신분이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을때라 술집에 보탤 회비를 내고 나니 나는 수중에 땡전 한푼 없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시각이 자정을 넘고 있었고, 한겨울이다 보니 밖에는 엄청 추웠다. 집에는 가고 싶은데 버스와 지하철은 이미 끊겼고, 택시를 타자니 돈이 없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서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집에 그냥 걸어갈래..”
“집이 어딘데?”
“안양..”
“야 걸어가다가 얼어 죽어..”
“그럼 어떡하냐?”
“나도 마포인데.. 걸어가도 1시간은 넘을 것 같아. 그런데 가다가 얼어죽을 거 같아.”
“지하철 첫차가 5시 40분에 있는데, 지금 12시 30분이니 5시간만 어디서 기다리자.”
“돈도 없는데 어디에 가서 기다리냐?”
“그러게. 그냥 종각역에 가서 기다리자. 밖에는 더 춥고 가게도 닫아서 갈때도 없다.”
     
그렇게 의견일치를 본 후 종각역으로 내려갔다. 첫차가 다닐때까지 지하철 역사가 연결되는 문은 닫혀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처음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나 술도 먹은데다 피곤해서 잠은 계속 쏟아진다. 잠은 오는데 쪼그려 앉은 상태니 불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나와 친구 몇 명은 다시 올라가서 박스를 들고 왔다. 그것을 바닥에 깔고 나부터 누웠다. 갑자기 노숙자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쪼그려 앉아 있는 것보단 괜찮았다. 눈이 감긴다. 잠에서 깨니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사실 잠은 오는데 너무 추워서 깼다. 이러다가 동사할 것 같았다. 깨서 보니 다른 친구 몇 명은 누워서 자고, 몇 명은 서서 그냥 밤을 지새우는 중이었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라고 멍때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아직 첫차가 다니려면 2시간을 더 견뎌야했다. 다들 추위에 너무 떨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버텨야 했기에 서로 붙어서 쪼그려 앉았다. 남자 5-6명이 쭈욱 벽에 붙어서 쪼그려 앉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아마 보고 있으면 ‘저 사람들 왜 저러고 있지?’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렀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그 시점에 지하철을 타는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일어났다. 서로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 #아직도떨고있니 ?” 질문을 마지막으로 서로의 갈길로 헤어졌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입이 새파랗게 변해 있고, 너무 떨어서 그런지 몸살로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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