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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y 08. 2021

스스로 타오르는 사람이 되자

자연성 인간 vs 불연성 인간

둘째 아이 생일이 5월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장인어른과 함께 아이의 생일잔치를 했다. 생일 케이크 위에 초를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초는 아이들이 끄기 전까지 자신의 몸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침에 읽었던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에서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갔다. 그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차분히 생각해보라. 당신은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인가. 아니면 불이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인가?”      


이 구절을 읽고 곰곰이 생각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떤 일이든 솔선수범해서 스스로 찾아서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누가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 두 성향의 사람을 불에 비유했다. 전자처럼 스스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성 인간, 후자처럼 그 반대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불이 닿아도 타지 않는 불연성 인간에 빗댄 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서 찾아보면 후자가 더 많을 것이다. 사람은 보통 편한 쪽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스스로 나서서 일을 벌리는 것을 싫어한다. 직장에서도 20%의 자연성 인간이 진두지휘하고, 그 아래 80%의 불연성 인간들이 지시 받아서 일을 하는 구조가 많다. 파레토의 법칙이 이 두 부류의 인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불연성 인간으로 살아가면 편하다. 굳이 내가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시키는 일만 잘하면 욕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연성 인간은 조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일의 본질을 보지 못하거나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한다.      


2030시절 나도 회사에서 이렇게 불연성 인간으로 오랫동안 살았다. 욕만 적당히 안 먹을 정도로 처리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에 관심도 부족했다. 일이 잘못되도 내가 왜 혼나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불평불만만 했다. 그 결과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읽고 쓰는 삶을 만나 조금씩 스스로 불타오르는 자연성 인간으로 살고 있다. 여전히 조금은 불연성 인간의 모습도 있지만, 이젠 웬만하면 직장에서 시키는 일도 주도적으로 그 입장에서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왜 해야 하는지 명확하다. 실수가 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니 그 위험성도 더 크다. 그러다 보니 더 열정적으로 일에 임하게 되었다. 또 6년 넘게 매일 글을 쓰는 이유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내 인생을 바꾸고 싶어서 스스로 불에 태운 것이다.      


위기를 극복으로 만들고 인생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연성 인간에 속한다. 그들은 먼저 적극적으로 불에 뛰어들어 자신을 태우면서 성공과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없다. 스스로 몸을 던져 움직여야 성공 또는 실패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온다. 오늘부터라도 되고싶고 갖고싶고 하고싶은 목표가 있다면 조금씩 자신을 불태워보자. 그렇게 태워가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근사하고 멋진 인생을 만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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