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들과 술자리 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을 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아저씨”
“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오늘 한끼도 못 먹었는데, 돈 좀 주실 수 있나요?”
“돈이요? 제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뒤돌아서는 모자를 쓰고 허름한 옷차림의 그 남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신호가 바뀌었지만 나는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아갔다.
“아저씨, 잠깐만요.”
“네?”
“제가 밥 한끼 사드릴게요. 따라오세요.”
그 남자가 멈칫한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하는 표정이다. 내가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데, 술기운에 그가 처량해 보였는지 먼저 호의를 보였다.
“나쁜 사람 아니니까 따라오세요! 마음 변하기 전에.”
“네. 감사합니다.”
나의 호통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조금 가니 해장국집이 보였다.
“해장국집 어때요?”
“네. 좋습니다.”
들어가서 해장국 두 개를 시켰다. 그는 나의 눈을 정확하게 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말 없이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밥이 나오마자 정말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밥을 국에 말아 입에 밀어넣는다.
“천천히 드세요. 제것도 좀 덜어드릴게요.”
“아니에요.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아니요. 전 배가 불러요. 많이 드세요. 배가 부르실 때까지.”
순식간에 다 먹더니 내가 덜어준 밥도 금방 해치웠다. 그는 밥을 다 먹고 나를 보더니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정말 서럽게 우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같이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식당주인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10시다.
“나가시죠. 배는 부르신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밥은 굶지 마세요.”
“네네. 아저씨 덕분에 제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제가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는 다시 건널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뒤를 잠깐 보니 그 남자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자꾸 기분이 이상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꾸 입으로 뭔가가 흘러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잠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눈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그 아저씨의 모습에 옛날 내가 오버랩이 된 것인지. 아니면 요새 같은 풍족한 세상에도 밥을 굶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안되어 보였는지. 그날따라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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