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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이에요

by 황상열

내가 사는 집은 일주일 중 화, 목, 일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여 버릴 수 있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은 회사 퇴근으로 인해 잘 지키지 못해서 일요일 저녁에 모아서 버리는 편이다. 재활용 쓰레기도 같이 비닐에 넣어 묶어서 내놓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 전봇대 옆에 쓰레기장이 있는데, 한꺼번에 모아서 거기에 놓아둔다.


쓰레기를 버리러 갈때마다 늘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가 있다. 지난 일요일 저녁도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그와 마주쳤다. 바짝 마른 외모에 박스와 폐지를 하나라도 주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옆에 쓰레기를 버리고 박스와 폐지를 같이 줍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에고 고마워요. 젊은 양반!”


“몸도 불편하신데 매일 이렇게 주우러 다니시는 거세요?”


“아파도 이렇게 폐지와 박스라도 주워야 살 수 있어.”


“연금을 받거나 자식들이 도와주지 않으세요?”


“아고 그런 게 있으면 이렇게까지 나도 안하지...”


“아! 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잠시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긴 세월 동안 고생하신 흔적까지 담긴 듯 했다.


“나는 가장이에요. 우리 손주 고등학교 졸업은 시켜야 해서요.”


“네? 손주 양육을 직접 하신다구요?”


“아들은 죽고, 며느리는 도망갔어요. 불쌍한 손주는 나라도 있어야지.”


“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박스를 묶어서 할아버지의 리어카에 실었다. 쓰레기장에서 폐지와 박스를 다 정리했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 리어카를 끌고 가기 시작한다. 힘에 부치는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안되겠다 싶어 리어카 뒤를 밀고 거리 한 블록 정도를 같이 이동했다. 마음이 무겁다. 평생동안 자식을 키우면서 희생했는데, 그 아들은 죽고 남은 손주까지 양육하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한 사람의 인생이 평생동안 이렇게 힘들고 불행하다는 것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나는 가장이에요.” 라는 말이 자꾸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나도 가장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가끔은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혼자 우울해 하기도 했지만, 그 할아버지를 보면 더 마음이 아프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밥이라도 한끼 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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