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노래를 찾는 사람들
잘 모르겠으면 가장 자신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좋다.
80년대 학번에게 군대는 대학 2년을 마치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두 번의 군사 훈련을 받으면 90일의 복무 단축 혜택이 있었다. 이걸 혜택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2학년의 전방 체험을 거부했었고, 이 군사 훈련 제도는 결국 폐지되었다.
대학이라는 것도 2년 다니니까 좀 시시해졌다. 교양 필수 과목에는 별 관심 없었고, 그나마 내가 선택한 과목에 대해서는 흥미가 조금 있었을 뿐, 애초에 생각했던 공부다운 공부는 대학에서도 하지 못했다. 2학년 2학기는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다. 자연스럽게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
6개월 정도 주어진 시간 동안 생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군대 가는 걸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좀 길게 여행 가는 정도로 생각했다. 군대는 모두 논산으로 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춘천으로도 간다는 걸 처음 알았고, 친구와 둘이서 춘천 여행 가는 기분으로 홀가분하게 시작했다. 그날 아침은 물안개가 짙게 깔려서 제법 괜찮은 풍경이었다. 보충대에서 친구가 돌아가고 그제야 홀자 남았다는 게 실감 났다. 의외로 두려움 보다는 홀가분함?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군대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약간 황당한 실수를 2가지 했는데, 그중 하나는 특기에 '축구'라고 적어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임이 노래를 시켰는데, '사계'를 불러버린 것이다. 두 가지 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소대에서의 일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당시 내무반장을 맡고 있는 선임이 잘 감싸 주었다. 내가 최종 배정받은 부대는 사단 수색대였는데,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이 몇 안됐다. 애초에 '사계'란 노래를 모른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그땐 노래 가사들을 잘 외우고 다녔었나 보다.
군대 제대한 이후에는 별로 군대 얘기 잘 안 했다. 뭐랄까... 지극히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 정도지, 지금도 난 군대와 군대 문화에 대해서는 많이 부정적이다. 늘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선택하며 지냈었다. 미리 결과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그 순간순간에 집중했다. 얼굴에 상처도 그렇게 해서 생겼고, 영창을 갈 뻔한 위기도 수습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뭘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결과가 미리 상상이 되고, 있지도 않은 파급 효과까지 걱정하다 보면 자꾸 망설이게 된다. 일도 그렇다. 하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고는 끝내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난 이런 모든 걸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나는 늘 가장 먼 길을 돌아서 가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그게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하다.
* 사계 (by 여자들-노래를 찾는 사람들): 2분 4초
* 1989년 10월 1일 발매
*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의 세 번째 곡
* 작사/작곡: 문승현
* 지금 친구들에게는 힙합 그룹 '거북이'의 곡이 더 친숙할 지도 모르겠다.
*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노찾사 1집을 더 좋아하고, 조경옥이 부른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를 가장 아낀다.
* 가끔 '민중 가요'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식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행진곡 풍이나, 가곡(발라드라고 해야 맞겠지)풍은 오래된 음악 장르 중의 하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곡들도 대부분 행진곡 풍이고, 내용적으로 보아도 '민중 가요'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음악적으로 식상하다고 하는 말은 넣어 두어도 괜찮다.
많이 알면 알수록 오히려 조심스러워지고, 두려움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