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문제다.
사람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법대로 하자'라고 한다. 상호 간의 합의가 불발되었으니 강제에 의해서 분쟁을 해결하자는 뜻이다. 여기에는 법이 정하는 대로 모두가 따르겠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때문에 법의 강력함은 사람(구성원)들의 동의에 기반해야 한다. 이 점에서 순환 오류가 생기는 데, 사람들이 서로 동의한다면 법이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결국 법은 사람들밖에 존재하는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법대로 하자'는 말은 폭언이라고 봐야 한다.
민주주의니, 법치 국가니 하면서 마치 법이 가장 올바르고 정의롭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왜냐하면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기 때문이다. 평등한데 왜 문제일까?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링 위에서 중량급의 선수와 경량급의 선수가 동일한 조건에서 시합을 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서의 동일한 조건이 바로 법이다. 상대의 조건이 다른데 무조건적인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그것이 법이 안고 있는 맹점이다.
예전에는 사실 나 자신조차도 막연하고 이론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해 왔지만, 법원에 한번 갔다 오고 나서는 이것이 매우 실체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법정 분쟁에 말리게 되어 법원이 출석한 일이 있었다. 기다리면서 앞선 사건들의 심리를 보고 듣게 되었는데, 그때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우선은 법원에는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이 있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 확실한 증거만이 중요하다. '사연'은 판단에 있어서 불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맥락'이란 것은 최종 판결에도 필요한 중요한 것이다. 그때 당시에 속으로는 이런 식의 재판이라면 좀 똑똑한 사기꾼이면 백이면 백 이기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돈'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겉으로 보기에 힘없고 돈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유리한 판결을 받는 걸 볼 수 없었다. 법의 역할은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강제할 뿐이다. 법은 결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다.
물론 내가 본 것은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제의 해결을 법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한 달 전쯤에 적어놓은 글인데, 오늘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내가 늘 정치에는 비관적(그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난 여전히 불안하다. 정치도 믿지 않는데, 법은 더 믿지 않는다. 그러니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특히나 박근혜와 그 주변에서 '법대로 하자'는 류의 말이 나올 때마다 기분이 몹시 나빴는데,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배경에 '법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이고, 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더더욱 이제 시작이어야 하는 이유다.
Breaking the law (by Judas Priest): 2분 35초
작사/작곡: Rob Halford, K.K. Downing, Glenn Tipton
1980년 발매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6 번째 스튜디오 앨범 'British Steel'의 3 번째 트랙(미국 발매 앨범에서는 첫 번째 트랙). 같은 해에 싱글로도 발매가 되었고, 주다스 프리스트의 최고 히트 싱글 중의 하나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내 이름을 지어준 밴드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 영어 이름이 'Roke'인데, 그 시작은 주다스 프리스트의 데뷔 앨범인 'Rocka Rolla'다. 이를 본 따서 내가 맨 처음 PC 통신 아이디를 만든 것이 'rokarola'다(지금도 여전히 아이디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고민하다가 이를 줄여서 'Roke'가 되었다(Coca Cola가 Coke가 되었듯이). 정리하면 그만큼 나에게 주다스 프리스트는 각별하다는 뜻이다.
한동안 헤비메탈과 멀어졌다 요즘 들어서 다시 조금씩 헤비메탈로 복귀 중인데, 헤비메탈 하면 주다스 프리스트다. 헤비메탈 그 자체인 밴드가 이들이다.
내가 구입한 초기(아마도 열 번째 이내) LP 중의 하나가 주다스 프리스트의 'Screaming for vengence'인데, 아직도 집에 고이 모셔져 있고, 여전히 좋은 사운드와 음악을 들려준다.
마케팅 관점에서도 주목해 볼만한 밴드이기도 한데, 심플하고 간결한 아이덴티티 구축의 좋은 사례임과 동시에 그것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질 즉 음악 그 자체로 구축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제품(서비스)이 먼저여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