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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Nov 16. 2015

Canon in D major (Pachelbel)

Jean-François Paillard

지훈아,

어때? 시험 공부는 잘 돼? 매번 이야기 하지만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고, 시험은 중간중간 공부한 것을 확인하는 거라는 걸 네가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설령 시험 점수가 안 좋더라도, 그게 네가 한 모든 것을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오늘은 클래식 음악을 한 곡 알려 주고 싶어. 아마도 지금은 네가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도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꽤 늦게 였어. 너만 할 때, 클래식 음악은 졸린 음악이었거든. 길기는 또 왜 그렇게 긴지... 근데 그게 몰라서 그렇지 짧은 곡도 많고, 확 깨는 음악도 많더구나.


아무래도 너에게 남겨 주고 싶은 음악들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폭 넓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고르게 되네. 그래도 다 들어 보면 좋은 음악들이야. 음악이란 게 소리로 표현하는 예술이잖아.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그 소리가 잘 받아  들여져야겠지?


아빠는 바로크 시대와 그 이전의 음악들이 좋아. 나름 유명한 작곡가로 말하면 바흐에서 출발하여 거슬러 올라가는 거지. 아빠가 그 시대의 음악을 좋아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당시에는 음악을 하는 '규칙'이 있었다는 거지. 쉽게 말하자면 음악을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었던 거지. 그게 나중에 낭만 주의 니, 표현 주의 니 하는 시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그런 고정 관념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게 발전해 온 거지.


규칙이 있는 게 왜 대단하냐고? ㅎㅎ 규칙 자체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 규칙 안에서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는 점이 대단한 거지. 너도 가끔씩 그런 생각 들지 않니? 빨리 어른이 돼서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고 싶다고 말이야. 어른이 된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지금도 너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어떻겠니? 대단할 것 같지 않니?


앞으로도 그럴 거야. 네가 원하는 상황 보다는 네가 원하지 않던 상황, 풍족함 보다는 부족함, 자유 보다는 제약이 더 많이 주어질 거야. 그런 상황을 네가 피하지 않기를 바라. 그렇다고 그게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그런 제약과 한계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때 재미도 있고, 보람도 크게 느낄 수 있을 거거든.


잘 안될 때도 있고, 내가 힘도 없고.. 그럴 때도 있어. 지내보니 그렇더라. 아빠도 그래서 하지 못했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 했다고 네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구나. 알겠지?


공부는 매일 매일 하고... 공부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 보도록 하고...

매번 같은 얘기 지겹지? ㅎㅎ 

담에도 또 같은  얘기해줄게. 금방 잊어 버리는 것도 맞잖아. 그렇지 않니? ㅎㅎ 


*Canon in D major for strings and basso continuo (by Orchestre De Chambre Jean-François Paillard): 6분 10초

*1983년 2월 Eglise Notre-Dame du Liban, Paris에서 녹음

*작곡: 요한 파헬벨 (Johann Pachelbel)

*그동안 몇 가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내가 이 앨범을 산 건 아마도 1990년대  중반쯤 이었을 텐데, 최근에 나온 음반인 줄 알았었다. 국내에 라이선스로 발매된 게 1984년이니까... 당시에도 꽤 오래된 앨범이었던 셈이다.

* 파헬벨의 캐논은 원래부터 유명한 곡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1968년에 바로 쟝 프랑소와 파야르 실내 악단이 연주하고 녹음하고 나서 비로소 히트곡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원곡 가수가 나중에 또 녹음한 것이다. 중요한 건 원곡 가수라는 점.ㅎㅎ

* 연주는 그야말로 우아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꽤 많은 캐논을 들었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캐논은 없다.

* 앨범에 여러 곡이 있지만, 파헬벨의 캐논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단연 최고로 좋다. 캐논이야 수도 없이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고, 변주 차용되었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의 연주로  익숙해졌다.

*바로크에서 바흐까지가 내가 좋아하는 시대인데, 낭만주의 음악 보다 훨씬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뭐 일단은 실내악 구성을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정착되게 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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