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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24. 2016

기억하거나, 기억되거나

 So we can be young and innocent

한창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많이. 그중에서 한 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진지하고 열정도 넘쳐서 나도 모르게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차... 확실한 데이터가 있는 건 아니지만, 4년 차, 5년 차를 넘어갈 때가 한창 재미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마도 그건 나의 경험 때문이리라...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가만히 있어도 일이 들어오는 그런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결혼할 당시에도 완전 백수는 아니지만, 반 백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그토록 꿈꾸어왔던 방송 PD를 그만 하겠다고 생각한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 호기심은 많아서 여기저기 기웃 거리기도 많이 했다. 이벤트(콘퍼런스) 아르바이트도 했고, 홈 쇼핑 제작 일도 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이것저것 촬영을 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좀 복잡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집은 일산이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는 포이동이었다. (3호선을 끝에서 끝으로 오가는 상황...) 결혼한 후 몇 달 후에 와이프가 취직한 곳은 방배동이었다. 너무 멀었다. 게다가 와이프는 일하면서 여러 가지 잡다한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해결을 의뢰하곤 해서, 나는 포이동에서 일을 마치고는 방배동으로 야근하러 다니곤 하는 일들도 많았다.


이럴 바에는 그냥 와이프랑 같이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힘을 합치면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벤트 PD 역시 대학 시절에 2순위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분야라 낯설지도 않았다. 문제는 나는 IMF 때 회사가 망하면서 이미 야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와이프는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지금이야 '창업'하면 누구나 한번 생각해 보는 만만한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사업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 오래된 경력자가 아니면 잘 생각조차 못하던 때였다.


나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사업을 해보자고 설득했다. 첫 번째는 작고 빠른 의사 결정을 가진 회사가 잘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내가 볼 때 당시 회사들은 대부분 수직적인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연하지 못했고, 의사 결정 등도 늦었다. 반면에 기업들이 원하는 것을 작더라도 빠르고, 본인들을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는 중간에 한번 더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수익 구조였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일은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일을 적게 하더라도 직접 마진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큰 회사는 제 경비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세 번째는 경험자로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회계 정산을 하는 일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직접 해도 하나도 겁먹을 이유가 없고, 회계 사무소를 이용하더라도 비용이 비싸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왜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와이프를 대표로 한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사업 분야에 따라서 결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와이프는 한동안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한번 해보자고 결정을 하게 되었다. 그 결정의 배경으로 와이프는 2가지의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는 지금 시작하면 실패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조금은 혁신적인 생각이었는데, PR회사라고 하면 보통 '전문직'이라고 (한창 뜨고 있던)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업무의 본질을 '서비스' 관점으로 생각한 것은 매우 다른 시각이었다.


나는 이 부분이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늘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강조 하지만... 사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남들과 다른 생각이란 게 크고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다. 오히려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부합작 회사가 세워지게 되었고, 출발하면서 우리가 가졌던 생각은 '우리는 서비스 회사다'라는 것이었다. 이 한 문장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의사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무척 효율적으로 작용하였고, 대외적으로도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국가가 창업을 장려하는 시대다 보니... 여러 가지 교육도 많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많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런 도움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결국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혹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자 하는가?'다. 그에 대한 답이 없어도 잘할 수 있지만, 확실한 답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잘 될 것은 분명하다.


St. Elmo's Fire OST(1985)

Young & Innocent (by Elefante): 4분 34초

작사, 작곡: John Elefante, Dino Elefante

조엘 슈마허(Joel Schumacher) 감독의 1985년작 'St. Elmo's Fire' 사운드트랙에 3번째로 수록된 곡

Elefante는 프로젝트 명으로 John Elefante가 형제인  Dino Elefante와 이 곡 작업을 하면서 발표한 이름으로 해당 이름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John Elefante는 미국의 록 밴드인  Kansas의 리드보컬 겸 키보드 연주자로 82년부터 84년까지 2장의 앨범에 참여했었다(85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에도 신곡이 포함되어서 그 앨범까지 3장의 앨범으로 카운팅 하기도 한다).

86년도쯤 '월간 팝송'이라는 잡지에 독자 엽서를 보냈는데, 그게 당첨이 돼서 LP 3장을 골라 갖게 되었는데, 그중의 한 장이 이 음반이었다.

이 OST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다. 거의 데이비드 포스터의 음반이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싱글 곡도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반대로 데이비드 포스터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도 이 영화의 주제곡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곡'Young and Innocent'를 가장 좋아했다.

'Young and Innocent'가 유명한 건 이 노래의 제목이 아니라 알프레도 히치콕의 1937년 영화로 유명하다. 때문에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영화감독에서부터 사운드트랙, 뮤지션까지 모두 이름값은 있는데, 묻힌 곡이 이 곡이다. 이 앨범을 얻었을 당시(얼마나 소중한 공짜  LP였는지... ㅎㅎ)에는 엄청 많이 들었다. 수록곡 전체가 듣기에 편한 곡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이곡은 가사를 보면 열심히 들어서 역시나 전체를 따라 부를(립 싱크로) 수 있는 곡이었다. 아직도 가사의 대부분을 기억하는데, 영어 가사가 쉽고 편해서 재미있다. 하지만 곡 자체가 명곡이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그저 여러 가지 내 개인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곡 정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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