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낮, 차가운 밤, 어떤 날...
낮에 좀 따뜻해서 걸었는데, 밤이 되니 바람이 차다. 약속이 있어 아침에 나설 때, 적당한 햇볕이 기분 좋았고, 낯선 도시 속을 걸으면서는 제법 편안한 감정도 가져 보고... 나만큼 편안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가져 보기도 했다. 나도 이 세상에 속해있다는 사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돌아오는 버스 창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빛에 땀까지 흥건하게 흘렸다. 그만큼... 딱 그만큼... 집에 돌아오고, 밤이 되니 차갑게 느껴지는 밤이다.
이전 글에 언급했던 '외로운 도시'를 방금 다 읽은 참이다. 내게는 많은 의미가 있는 책이 되었다. 그동안 머리 속에 맴돌던 생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제공해 주었다. 비록 책의 내용이 아니라 독서의 경험과 관계된 것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책은 너무 좋았다. '책을 내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라고 평가할 만하다.
나의 송북 리스트에 맨 처음 올라도 이상할 것 없는 노래지만 그동안 많이 아껴두었다. 사실 아껴두었다기보다는 뭔가 이 노래와 맞출 수 있는 생각이나 상황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카페 테라스의 햇볕 아래에서 책을 읽고, 오맨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을 먹고, 길을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서 멍하니 잠들었다가 책의 마지막을 읽은 오늘 같은 날..... 이 노래가 제법 어울린다.
날이 따뜻한 만큼 차가운 밤을 피부로 느끼고, 아팠던 지난 일만큼 현재의 일상에 안도하고,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던 만큼 지금의 여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오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할렐루야(Halleljah)'를 배경 삼아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날이다.
한 때는 누군가 슬픈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면 이 노래를 추천하곤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로만 이루어진 이 노래는 슬픈 사람에게 충분한 공감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지금 내게 이 곡에 대해 물어 온다면 나는 이 노래를 슬픈 곡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어떤 하루를 마무리 짓기 좋은 노래라고... 혼자서 조용히 나의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노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순간순간 치열하고, 때론 아프고, 고통스럽고, 때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그런 날들이 지나고... 혼자 남았을 때, 혹시라도 나와 함께해 줄 누군가 혹은 무언가 필요하다면 그때 한번 들어 보라고 권한다.
Hallelujah (by Jeff Buckley): 6분 53초
작사/작곡: Leonard Cohen
1994년 발매된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인 'Grace'의 6 번째 곡. 2007년에 역시 여섯 번째로 싱글 발매되었다.
발매 당시에는 판매도 시원찮았고, 평가도 호불호가 갈린 편이었는데, 그야말로 꾸준히 인기와 재평가를 받은 앨범이다. 지금은 아마도 '죽기 전에 들어야 할 1001장의 앨범' 리스트에도 올라 있을 것이다.
제프 버클리에 대해 띄엄띄엄 안다면 이 앨범 발매 후에 얼마 안가 죽은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데, 그가 죽은 것은 1997년이다. 앨범 발매 후 콘서트 및 녹음 작업도 했었고, 새 앨범을 위해 녹음하기 직전에 사고로 죽었다.
원곡은 레너드 코언의 7 번째 앨범인 'Various Positions(1984)'를 통해 발표되었다. 레너드 코언의 곡과 제프 버클리의 곡은 분위기가 정말 다른데, 그 중간에 존 케일(John Cale)이 존재한다. 1991년에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I'm Your Fan'에서 존 케일이 처음 커버했는데, 이 곡을 기반으로 제프 버클리가 커버했다. (커버의 커버!)
'I'm Your Fan' 앨범 역시 헌정 앨범 장르에서 손꼽히는 명반으로 꼽힌다. 레너드 코언의 곡이 가사와 멜로디 외의 사운드 편곡이 미니멀한 편이서서 커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제프 버클리의 커버는 모조닷컴의 원곡보다 더 잘된 커버곡, 가장 슬픈 곡 등의 다양한 순위에서 상위권에 든다. 뿐만 아니라 롤링스톤지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의 리스트 안에도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제 이 곡은 제프 버클리의 노래라고 해도 모... 큰 무리 없다. ('거위의 꿈'이 인순이의 노래인 것처럼?) 들어 보면 안다. 레너드 코엔의 곡은 딱! 레너드 코언 스타일이다. 최근에는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부른 곡이 영화 '쉬렉'에 삽입되기도 했다.
2016년 레너드 코언의 죽음 이후에 재조명을 받아서 원곡이 발매 이후 처음으로 (무려 32년 만에!)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