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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pr 11. 2017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바람 부는 봄 언덕 위의 노래

점심을 먹는데,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린다. 3명의 남자가 모여 한창 피기 시작하는 벚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양천 쪽에 좋다느니, 여의도에 벌써 사람이 몰린다느니 하는 얘기들이다. 사실 요즘에는 어딜 가나 벚꽃 천지니까... 개인적으로 벚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벚꽃 현상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편이다. 그러던 중 한 명이 말한다. "요즘엔 벚꽃을 봐도 왠지 설렘이 없어."


설렌다... 설렌다... 설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단어에 속으로 되뇌어 보니, 문득 그 느낌이 기억났다. 그렇지... 그런 감정이 있었지. 너무나 오랫동안 깊숙한 곳에 담아 두었던 말들...


일을 하면서, 혹은 (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지극히 이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설득(혹은 이해)'과 '공감'이란 소통의 양면 중에서 '설득'만이 남게 되었다. 많은 시간 혼자 남게 되면 '감정'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공감'이 없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감정은 나누어야 한다. 때로는 그게 부질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딱히 그 때문은 아니지만 점심 먹고 나서는 천천히 걸어서 뒷동산에 올랐다.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따뜻한 햇살 사이로 바람이 분다. 이런 게 봄바람이란 건가? 사실 동네가 언덕이 많아서 조금만 걸어도 높은 곳에 오르게 되고, 바람도 제법 많은 편이다. 그럴 때마다 뭔가 마음속에 흔들리는 것이 있는데... 그게 '감정'이란 건가 보다.


얼마 전 '클라우스 노미'라는 가수를 알게 되어서 지난 일요일에 그의 음악을 듣는데, '삼손과 델릴라'의 아리아를 부른 게 있었다. '일렉트로닉 펑크 음악을 하는 카운터 테너'라는 외모만큼이나 음악도 종잡을 수 없는 가수인데... 그 와중에 오페라 아리아 한 곡이 귀를 잡아끌었었다. 그래서 곡에 대한 기초 정보는 어느 정도 공부해 두었었는데, 오늘 다시 그 곡이 생각났다.


까미유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다. 생상스의 오페라도, '삼손과 델릴라'라는 오페라도, 프랑스어라는 것도 모두 생소했지만, 그 노래의 느낌만은 자신 있게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아리아는 델릴라가 삼손의 약점을 캐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를 유혹하는 내용이다. 진실은 악의이나 사실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의 노래인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소리 그대로일 뿐이니까... (바람=유혹인건가? '바람 피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다시 눈을 감고 노래를 들어 본다. 그리고 산 언덕에 앉아 있는 장면들을 떠올린다. 바람이 이 노래를 싣고 온다. 따뜻하다. 그리고 평화롭다.... 점점 잊혀 가는 감정의 언어들을 다시 찾아본다.

양산을 쓴 여자 (클로드 모네) - 오르셰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다.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https://youtu.be/noHQXogDsA0

Mon coeur s'ouvre à ta voix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 6분 40초

작곡: Camille Saint-Saëns

대본(Libretto): Ferdinand Lemaire

프랑스 작곡가 까미유 생상의 유일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다. 애초에 생상은 오라토리오를 제안했는데, 대본 작가는 오페라로 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1876년에 작곡을 완성했지만, 프랑스에서는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고, 1877년에 독일 바이마르의 Ducal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점점 인기와 명성을 얻어 나가 지금은 정기적으로 공연되는 유일한 생상의 오페라라고 한다.

위의 영상에 나오는 가수는 Elīna Garanča라는 라트비아 출신의  오페라틱 메조소프라노(operatic mezzo-soprano)다. 유럽권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메조소프라노라고 하는데... 내가 평소에도 꾸준히 오페라를 듣는 편은 아니어서... 이번에 여러 오페라 가수들의 곡을 듣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다. (이제 한창 전성기라 그런지, 검색 노출이 좋다. ㅎ)

물론 다른 전설적인 가수들의 노래도 좋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것도 있는데, 녹음 상태와 목소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말 그대로 '아련한' 느낌이 든다. 곡 자체가 가진 멜로디가 그런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고음보다는 중저음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서... 메조소프라노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라는 평가가 반갑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의 추천 음반으로는 정명훈 지휘,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과 합창단 연주, 삼손 역에 플라시도 도밍고, 델릴라 역에 발트라우트 마이어의 음반이 꼽히고 있다. 그래도 내가 전 곡을 들어볼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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