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없음'의 그 하루
1.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오늘 뭐할래?"
가끔씩, 잊을만하면 던져지는 질문이다. 돌이켜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상황에 따라 달라졌던 것 같다. 내가 하는 대답이던, 내가 듣는 대답이든 간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철학자의 얘기를 떠올려보면, 오늘 무언가를 하는 일은 결국 내일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오늘 할 일이란 내일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내일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 가능하면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요즘에는 평소에도 아무것도 안 하려고 노력하니까... 어쩌면 나는 내일 종말이 올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내일도 믿지 않고 있다. 그뿐이다.
2.
긴 연휴 기간 동안 밖에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종말 전야인 것처럼 고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네에 불 몇 개 덜 켜진 것뿐이고, 그렇다고 평소에 세어본 것도 아닌데... 음산한 기운이 가득 들어차 있다. 사람이 있어도 두렵고, 사람이 없어도 무섭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책 기운에 취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3.
날짜를 지우고, 시간을 없앤다면 우리 인생은 종말 전야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그보다 먼저 도대체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2016년 11월 25일(1판 인쇄)
민음사
장은진 작가는 본명이 김은진이라고 한다. 쌍둥이 작가로 2011년에는 두 작가가 한날한시에 책을 낸 일도 있었다. 다른 형제 작가는 김희진 작가다.
소설은 이야기지만 내게 남겨지는 것은 감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예 대놓고 분위기와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다.
약간 구성이 복잡한 실내악 같은 느낌... 재난 상황이긴 하지만 말 그대로의 재난이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이용한 공간의 연출이 아닐까 싶다.
179번에서 점점 카운트 다운되길래 나는 그게 날짜의 대체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고 작품 전체가 어느 하루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물론 이야기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품고 있지만..)
옛날을 돌이켜 보니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꽤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이야기에서 좀 벗어나서 그림을 그려 나가는 듯한 스타일. 그 이유가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장은진 작가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A day in the life (by The Beatles): 5분 35초
작사/작곡: Lennon-McCartney
1967년 5월 16일 발매된 비틀스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마지막 수록곡이다. 싱글로는 1978년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의 B면으로 발매되었다. (그러니까 리드 싱글은 아닌 셈)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꼽히기도 하는 앨범에서도 'A day in the life'는 명곡으로 첫 손에 꼽히는 곡이다.
명곡이란 게 단지 듣기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때때로 이 곡은 편안하기에 듣기에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사이키텔릭 록과 아트 록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곡이다. (해당 장르에 대해서는 비틀스 이전에 비치 보이즈(The Beach Boys)가 먼저 시도했었다. 당시 이 두 그룹은 당대의 라이벌로서 서로 음악적인 영감을 받으면서 경쟁을 통해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진짜로 같이 작사 작곡을 한 곡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비틀스의 곡에는 '레논-매카트니'로 표기되는데 표기만 그럴 뿐 각자가 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곡은 서로가 교대로 작곡해 나가면서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가사는 3파트로 나누어지는 데 처음과 마지막은 레논이, 중간 부분은 매카트니가 썼다. 레논의 가사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고 영감을 떠올린 내용인데, 유명 인사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1절)과 도로에 난 구멍(2절,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고 중간의 매카트니는 어느 날 아침의 출근 풍경이다. 매카트니 부분의 경우는 이전에 써 둔 멜로디로 후에 따로 곡을 완성할 계획이었다고 이 곡에 합쳐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이키델릭 하게 들리는 부분이 중간의 오케스트라 간주인데, 이게 '날짜 없음'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이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비틀스의 곡 중에서 명성에 비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곡인데, 이번에 진지하게 들어 보니...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