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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Oct 10. 2017

'Cause we ended as lovers

사랑이라는 믿음, 사랑이라는 본능

솔직히 말하면 책 뒷 표지에 있는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한 줌 재로 돌아갈 그날에도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은 남는다."라는 글귀에 이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어. 사랑이라면 지긋지긋하거든. 사랑에 목숨 거는 류의 이야기는 이제 지치다 못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니까. 적잖이 고민을 했지만 오래간만에 한 번쯤은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읽었지, 뭐.


왜 내가 사랑을 싫어하느냐고? 글쎄 그냥 싫증이 낫다고나 할까... 왜 있잖아 사람들 모여서 이야기하면 결국은 남녀 얘기로 빠져 드는 거... 그게 싫었어. 우리는 그렇게 할 얘기가 없나? 맞아. 그 남녀 얘기가 문제인 거지.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바로 그거지. 혹시나 오해할까바서 당부하는데, 남녀 얘기 싫어한다고 동성애를 좋아하는 건 아냐. 그쪽도 결국 쾌락의 욕망을 추구한다면 나에게는 마찬가지의 의미인 거지. 말하자면 그런 거. 가족 간의 사랑, 사람들 간의 존경, 혹은 우정... 그런 것들도 아니 그런 것들이 본질적으로 사랑에 훨씬 가까운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거지. 간단히 말하면 이제 짝짓기 같은 범주에서는 멀리 비껴 나있는 거지.


10년 전쯤에 '로드(The Road)'라는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나. 그 무채색의 세계관에서 꽤 당황하였었는데, 그 이야기도 생각이 났어. 처음에는 이거 뭐야? 짝퉁인 거야? 하는 생각도 잠깐 했어. 하기사 이런 재난 상황이야 누구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그래도 로드의 흑백 세계보다는 훨씬 괜찮더라. 게다가 중간중간에 던지듯이 말하는 '일상의 재난' 상황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격하게 공감이 되더라고.


  SF이던, 재난 소설이던 그것도 아니면 (퀴어) 로맨스이던... 이게 장르 소설이냐 아니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고... 장르 소설이란 게 그래. 보다 단순하게 주어진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것일 뿐, 결국 어차피 다 같은 이야기니까. 암튼 그냥 재미있게 따라가려고 했어. 오랜만에 우리말로 된, 우리 글로 된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니, 그냥 모든 게 다 좋더라고. 그러다 한 방 맞았지.


무언가 사람답다는 거... 물론 여기에도 수많은 의견들이 달라붙고, 이게 맞니 저게 맞니 한 판 붙을 문제지만... 누군가를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거... 그걸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사랑은 남는다'라는 문장은 꽤 완벽한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어. 거지 같은 세상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나 막살래라는 생각에 빠져 살다가 누군가를 보고 '아, 저렇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깨달음. 이건 흔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이라는 본능 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


요즘에 '혼자 사는 삶'이라는 것과 '관계를 맺는 삶'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거든. 내 생각은 그래. 어쨌든 사람은 혼자 살 수도 없지만 혼자 살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조금씩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뭐랄까... 이제 어느 정도 스스로 치유가 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런 가운데 이제 다시 사랑을 마주하게 되었네. 관계를 맺는 것. 일단 그 정도.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면... 괜찮은 것 같아.


해가지는 곳으로(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2017년 6월 30일(1판 1쇄)

2017년 8월 14일(1판 2쇄)

민음사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The Road'와 유사한 형식(재난 로드무비?)의 작품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SF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배경과 상관없이 퀴어 로맨스로 보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랴...라고 생각한다.

뭐랄까, 서사? 혹으 내러티브? 이런 걸 따지자면 왠지 뭔가 허전한 기분도 들지만, 이제는 그럴걸 따지기도 귀찮고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자 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중독 혹은 집착이랄만큼 가끔씩 무언가에 꽂힐 때가 있는데, 이 시리즈에 꽂힌 후로 지난 2주 동안 16권의 책을 사들였고, 긴 연휴가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서 13권을 읽었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해가 지는 곳으로'를 읽고 난 후에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이 앓았다. 그나마 긍정적이었다는 점이 위안이다.

표지그림: 나선미 'A LAYER SPACE(III)',(2016, Oil and acrylic on canvas)


Stevie Wonder presents Syreeta Album Cover(1974)

'Cause we ended as lovers (by Syreeta): 4분 30초

작사/작곡: Stevie Wonder

1974년 발매된 그녀의 2 번째 스튜디오 앨범 'Stevie Wonder presents Syreeta'의 6 번째로 수록된 곡이다.

Syreeta Wright(보통 'Syreeta'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다)는 스티비 원더와 1970년에 결혼했었는데, 18개월 만에 이혼했다. 이 앨범은 이혼 후에 발매된 것이니 이혼 후에도 스티비 원더와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키에 의하면 결혼 전부터 스티비 원더와 공동 작곡을 하고, 코러스를 담당했고, 이후에도 20년 동안을 친구로서 같이 음악 활동을 했다고 한다. 왠지 이 곡의 가사와 잘 어울린다. 그녀는 2004년 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타계했다.

이 곡은 1975년에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이 앨범 'Blow by Blow'에 기타 연주곡으로 커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곡의 제목을 들으면 당연히 떠올리는 이름이 제프 벡일 것이다. 대표적인 기타 명곡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음악을 찾아보곤 하는데, '해가 지는 곳으로'의 분위기에 맞는 곡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이 노래가 떠올랐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제프 벡의 연주곡이었다. 그 분위기와 톤이 소설의 총체적인 인상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영화 델마와 루이스 사운드트랙에 'Thunderbird'라는 곡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 보니 이 곡이 스티비 원더의 곡이고 그보다 먼저 리코딩된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들어 보았더니 이건 또 다른 세계였다. 2 가지 버전을 여러 번 듣다가 Syreeta의 버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Soul 뮤지션이지만 이 곡에서의 그녀의 보컬은 팝페라 같은 느낌을 준다. 제프 벡의 연주에서는 차가움과 황량함이 극대화되어 있는데, 그 녀의 곡에서는 그 밑 단에 따뜻함 같은 것이 흐른다... 그 느낌이 이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린다. (아래 영상에는 '델마와 루이스' 사운드트랙으로 결정)

https://youtu.be/NGtiPH37S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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