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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ug 12. 2018

Size does matter

 '고래'는 얼마큼 큰 것일까?

언젠가 일하는 중에 현수막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다가,

"디자인이 좀 없어 보여도 크게 출력해서 걸어 놓으면 볼만해요"라고 했더니,

"맞아요, 예술은 일단 크기가 가장 중요하다니까,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건 스펙터클한 경험 때문이라고요. Size does matter!"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크기와 관련한 것이라면 나도 할 얘기가 있다.


클림트의 '키스'는 너무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살짝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다이어리에 가방에 컵 받침에...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제목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늘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빈(Wien)에서 벨베데레 궁전을 가보기 전까지는....


클림트의 키스는 벨베데레 궁전의 넓고 햇볕이 잘 드는 방을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보자마자 놀란 것이 그 크기였다. 내 키보다도 더 클(정확하게는 180cm*180cm)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맨날 인쇄된 그림으로만 보았으니...)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전의 햇볕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원제는 'Lovers')는 그렇게 압도적이었고, 지금도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만 무수히 반복하며 말할 뿐...) 


클림트의 '키스'말고도 미술 작품의 크기에 대한 경험은 몇 개 더 있다. 어쨌거나 크기가 전부라거나 결정적인 요소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은 확실히 수긍할 수밖에 없다.


천명관의 '고래'는 클림트의 그림을 마주 대하던 바로 그 감정을 불러냈다. 일단 크다. 제목이 '고래'인 것은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절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런 스케일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는 무엇보다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야기 속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신화와 우주, 주술 같은 요소를 섞어 시간을 무한대로 늘려서 마치 우주와 인류의 시작과 끝은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대다나다!'


그런데 음악에서의 '크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문학에도 음악에도 '대작'이란 수식어는 많다. 음악에서는 대체로 길이가 긴 것을 대작이라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녹음이란 기술이 발명되고 난 후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이전의 라이브 시대에는 역시나 공연의 규모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1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에 등장하는 대규모 합창단 같은 것.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니까... 리코딩의 시대에 '길이'가 중요해진 것 또한 당연한 변화겠지만... 그런 시대의 '대작'중의 하나가 반젤리스의 'Heaven and Hell'이다. '고래'가 영화화된다면 이런 풍이 잘 어울릴 것 같다. 


고래(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19)

천명관 지음

2014년 1월 15일 1판 1쇄

2017년 5월 2일 1판 6쇄

문학동네

언젠가 국문학을 전공하신 동생께서 추천해 주신 작가가 '천명관'이었다. 동생님의 덕후 기질 등등을 고려해 볼 때, 혹시 웹툰 작가 혹은 무협지 등등의 장르 작가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완전 동떨어진 예측은 아닌 게 천명관 작가는 소설가 데뷔 전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한다. 2003년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고, 2004년 '고래'를 발표하고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바로 정점을 찍었다.

'고래'를 읽고 난 후 여기저기 알라딘 중고 서점을 돌아다니며, 천명관 작가의 작품을 끌어 모았는데,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까지 장편들은 일단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한 게, 워낙 '고래'의 영향이 커서... 뒤의 작품들은 오히려 그 매력이 덜한 느낌? 순서가 바뀌어 다른 작품들이 먼저 발표되고 후에 끝판왕처럼 '고래'가 발표되었다면 좀 더 자연스러웠을 텐데... 하는 생각. 그저 이 작가가 세상의 평에 살짝 무관심한 편이기를 바랐다.

'서사의 힘'으로 요약되는 세간의 평들에 대해 내가 덧붙일 말은 없지만, 내가 '고래'를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스케일이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인류의 역사를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말빨 하나로 자연스러게 엮어 낸 점은 '장인'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탁월한 작품이었다. 만약 내가 이런 작품을 내었다면 솔직히 그 이후로는 새로운 작품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말 필요 없다. 그냥 시작하면 된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나머진 알아서 흘러간다. 이건 '고래의 법칙'쯤 되려나???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대체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가 보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실사판이 나온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고, 어벤저스도 실사판 영화가 나오는 마당에 이 작품이 영화화되지 못할 기술적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소설을 영상화하는 감각이겠지. (누군가는 등장할 것으로 믿을 뿐)


Heaven and Hell (by Vangelis): 43분 14초

작사/작곡: Vangelis

1975년 발매된 반젤리스의 스튜디오 앨범이다. 스튜디오 앨범 기준으로 세 번째 앨범으로 파악된다. 밴드 예스(Yes)의 보컬인 존 앤더슨(Jon Anderson)이 참여했고,  English Chamber Choir가 백보컬, 나머지는 반젤리스가 모두 담당했다. 반젤리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사운드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앨범이다.

LP 기준으로 앞면의 'Heaven and Hell, Part 1', 뒷면은 'Heaven and Hell, Part 2'로 구성되어 있어 한 곡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총 9곡의 소제목이 있다. 즉 9개의 곡이 이어진 콘셉트 앨범이다.

고등학교 시절 불법복제 음반(빽판)으로 갖고 있었는데, 커버 톤이 초록색이었다. 나름 초록색 버전도 나쁘지 않았는데... 커버 이미지만 보면 제목이 'Fire and Ice'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천국은 대체로 평온한 소리, 지옥은 아방가르드한 소리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분이 된다. 다만 지금 들어 보면 아방가르드한 소리는 사실 없다고 할 만큼 잘 정돈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칼 세이건(Carl Sagan)의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어 유명해졌는데, 해당 곡은 Part 1의 13분 정도에 시작하는 'Movement 3(3악장) - from "Symphony to the Powers B"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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