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어서 읽는 게 아니고, 읽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바람이 선선해진 아침 시간, 동네 까페에서 통유리 앞으로 난 긴 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당돌하게 말을 건다.
'아저씨, 그거, 재미있어요?'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 속이 하얘진다.
'어..... 기대했던 거 보다는 좀 지루한데....'
'근데 무슨 내용이에요?'
'아... 두 여자의 이야기인데, 어릴 때부터 사춘기까지? 제목상으로는 그렇고, 둘 중의 하나가 결혼하는 날까지의 이야기예요. 나이로 치면 서너 살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의 이야기', 총 4권 중의 첫 번째 이야기이고, 약 60년 정도에 이르는 평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그 두 명이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같은데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요?? 아니면 이상한 이야기인가?'
'이상할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예요. 그래서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보편성이랄까... 저 멀리 이탈리아의 나폴리, 그것도 도심 외곽 시골 마을의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똑같이 살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다 같은 것 같아요.'
'잘 못 알아듣겠어요. 어려워요'
'그러니까...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사람이든 자라면서 겪는 일들이란 게 공통적인 것들이 있다는 거죠. 대표적인 게 어느 순간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은 일들... 하지만 단지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벌어지는 일들이란 게... 비슷하다는 뜻이에요.'
'그럼 제 얘기를 해도, 아저씨는 이해하시겠네요?'
'아마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할 수 있겠죠? 전부는 어렵겠지만...'
'그럼 아저씨 이야긴요? 아, 제 말은 아저씨 이야기를 한다고 치면 제가 공감할 수 있을까요?'
'그건 더 어렵겠지요.'
'왜요?'
'일단 내가 가진 경험이란 게 모두 내가 겪었던 일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 내가 들었던 얘기들과 읽었던 책들과 배웠던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내 안의 경험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 경험이 클수록 공감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그게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겠고...'
'그래서 책을 읽으라는 건가? 아저씨는 책 많이 읽어요?'
'뭐, 그냥... 읽을 때도 있고, 안 읽을 때도 있고...'
'제가 읽을 만한 책이 있어요?'
'글쎄, 책 읽는 거 안 좋아하는데,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TV를 보든, 인터넷을 하든, 사람과 이야기를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을 찾으면 돼요. 책하고 안 친해 보이는데요?'
'그렇게 안 친한 건 아녜요. 저도 책 읽어요. 그런데 재미는 없어요. 아저씨는 재밌는 책 많이 알 것 같아요. 많이 읽었다면...'
'내가 재미있다고 다른 사람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을 그만둔지도 오래됐고... 나도 대부분의 책은 재미없어요. 하지만 재미있어서 책을 읽는 건 아니에요.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거지. 읽으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예를 들어, 이 책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나는 어느 쪽일까 생각하기도 하고, 또 옛날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것 등등. 때로는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다 재미니까...'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음....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를 생각해 봐요. 어느 날 어떤 친구가 이야기를 시작하죠. 연애 이야기 같은 거?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들어요.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같이 탄식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를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각자의 머리 속에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앞질러 가기도 하고, 또 변형을 하기도 하겠지요. 그것과 비슷해요.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열심히 듣는 거죠. 지금 내 얘기를 듣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 여기 자주 오세요?'
'가끔...'
'다음에 보면 또 아는 척해도 돼요?'
'물론이죠. (하지만 아마도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죠.)'
나의 눈부신 친구 (원제 'L'amica geniale')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지음
김지우 옮김
제1판 제1쇄 2016년 7월 7일
제1판 제8쇄 2018년 2월 12일
원 작품은 2011년에 발행되었고, 이후 2014년까지 4권에 걸쳐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를 묶어 '나폴리 4부작'으로 칭한다. 정리하면 나폴리 4부작의 1부이며, 유년기와 사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분과 지난여름 보령에서 함께 술 마시며 이야기하던 중 책 이야기가 나왔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로 명작, 그 외에는 의견이 조금 엇갈렸는데, 그분께서 '나폴리 4부작'을 강력 추천하셔서... 읽어 보리라 생각했다.
이미 4부작이 완간되어 세트로 판매가 되고 있는데, 주머니 사정도 있고, 또 한 번에 다 읽지도 못할 것 같아서 1권만 우선 사기로 했다. 교보문고에서 아무리 검색해도 세트밖에 안 나오길래 북 컨시어지에서 문의하였더니 친절하게 서가에서 직접 찾아다 주셨다. 나름 고맙고... 감동했다.
날이 덥기도 했고, 몸과 마음의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어서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읽었는데, 책장을 계속 넘기에 되는 타입도 아니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읽었다.
천명관의 '고래' 생각이 많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고래' 스타일의 문체가 좀 낫다. 이 작품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글이 지나치게 깨끗한 데다가 좀 메마른 편이라서... 쉽게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2부에 대한 기대감은 생겨서... 내일 당장 서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 (김진표(JP) feat. 제이레빗): 3분 35초
작사: 김진표, 제이레빗
작곡: 라이머, 키겐
2012년 발표된 김진표 6집의 여섯 번째곡. 따로 싱글로 발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뮤직 비디오는 있다.
이 곡을 어떻게 처음 듣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어느 날인가 김진표 2집 이후의 음원을 구해서 주~욱 듣다가 낯익은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이레빗이다. 제이레빗은 친구의 차에서 처음 듣게 되었는데, 사실 한번 들으면 잊기가 힘든 그런 목소리라서... 한 때는 좋아서 좀 들었지만, (내게는) 이게 또 오래갈 수 있는 목소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곡에서의 목소리와 캐릭터는 너무나 잘 어울려서 질리지 않고 계속 들을 수 있다.
어느 '아저씨'에게 이 곡을 들려줬더니 정말로 설레 하면서 애지중지했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 '어느 아저씨'는 절대로 내가 아니다. 내가 들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