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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Oct 05. 2018

I will have missed

오래된 시간 속의 삼촌

“그게 몇 년도인지 기억이 안 나네. 워낙 시간을 안세고 살아서… 2011년쯤인가? 작은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 공릉동인가? 에 있는 병원에 갔는데, 썰렁하더라. 훨씬 더 오래전 이모부 때보다는 낫지만… 작은 아버지도 친지들과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나 봐. 나도 그런데… 어쩌면 나도 작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건가?”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의 동생들이 늘 있었어. 삼촌들이지. 많을 때는 한꺼번에 3명이나 있었던 적도 있었지. 그중에서 작은 아버지는 아마도 가장 오래 같이 살았을 거야. 나에게 삼촌이란 존재는 가족의 필수 구성원이었지. 큰집에 갈 때도 삼촌하고 같이 다녔었어.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방학만 되면 바로 다음 날 짐 싸갔고 시골로 내려갔거든. 그럴 때 같이 다녔었지. 뭐랄까 듬직한 존재? 였지”


“점점 커가면서 작은 아버지가 집안사람들 중에서 뭔가 배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어. 작은 아버지가 늦둥이라 나이가 어렸거든. 사촌 형이 세 분 계시는데, 첫 째 형님보다도 어렸거든. 그런데 집안 모임에 나이가 있나? 오직 서열이지. 작은 아버지는 늘 허세가 넘쳤어.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 진학한 사람인 거지. 교육이란 게 그래. 왠지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길 같은 거? 당연하지 옛날에 교육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고, 고등 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관직을 받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작은 아버지의 지위는 거의 동네에서 ‘판사’급의 지위를 부여받았던 것 같아. 이런저런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논쟁이 있을 경우 찾아가서 물어보는? 게다가 그 대학이 신학대학이었던 것 같아. 처음에 그 얘길 들었을 때는 뜬금없이 웬 신학? 그랬지. 가톨릭 계열의 신학대학이었고, 일종의 신부 수업을 받는 거였지. 어렸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생각이 나. 왜 남자가 신부 수업을 받지? 하면서 말이야. 집안도 천주교 집안이라 여러모로 친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어느 날 신부수업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온 거야. 우리 집에 얹혀살면서 그때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셨던 것 같아. 대학 그만두고 아마 군대에서 자동차 정비병이었는지… 제대하고 나서 서울에 와서 자동차 정비 일을 시작한 거지. 판금이라고… 잘은 모르는데, 찌그러진 차체를 펴는 작업? 뭐 그런 걸 하셨던 같아. 일하는 곳에 몇 번 가게 되었는데, 좀 큰 자동차 정비 공장이었어. 외삼촌들도 자동차 정비 일을 해서, 함께 일하기도 했지. 이게 시대의 흐름인 것 같아. 자동차가 많아 지니까, 그에 대한 일자리가 생겨나고, 어차피 모든 사람이 동일 선상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고 달려든 거지. 일 하면서도 책을 사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아마 그게 자격증 시험이었던 것 같아. 여전히 시골에서는 허세 당당했는데, 그게 또 자동차라는 게 그렇게 흔한 때는 아니었으니까… 뭔가 또 앞서간 사람이 되었던 거지 뭐”


“우리 집이 강남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삼촌이 결국 분가를 하게 되었는데, 계속 서울에서 사신 건지… 잘 모르겠어. 얼핏 안산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명절 때 큰집에서나 볼 수 있었지. 내 입장에서는 그나마 얘기가 되는 사람이었던지라… 나 자신이 외계인 같이 느껴지던 집안 모임에서 유일하게 의지가 되었던 분이지”


“삼촌이 작은 아버지가 되는 순간, 그러니까 드디어 삼촌이 결혼을 하는 날… 왠지 모를 벽이 생기게 된 것 같아. 어린(그때는 어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삼촌과 작은 아버지는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거지. 시골에서는 그래도 서울 여자랑 결혼한다고 많이 화제가 되었던 것 같아. 얼마 안 가 그 화제는 수군거림으로 바뀌었고, 명절 때에도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어. 가끔 나타나실 때는 거의 혼자였고… 시골에서는 말 많거든. 지나가다 들리는 얘기들은 뭐 처한테 잡혀 산다는 둥.. 그런 얘기들이지. 그런 건 충분히 이해할만했어. 그런데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삼촌이 사라졌다는 게 그게 더 서운했지. 그러고는 한동안 못 본 거 같아”


“그러다가 돌아 가신 모습을 보게 된 거지. 괜히 죄송하고 그러더라… 한편으로는 덧없기도 하고. 옛날의 일들이 진짜 있었던 건가… 잘 믿기지도 않고…”


“그런 게 궁금해. 왜 신학 대학에 간 것인지, 그걸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지. 서울로 올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 당신이 자라온 시절과 당신의 삶을 살던 시절…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결혼이라는 거,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계셨는지. 이제는 삼촌의 많은 것들이 허풍이고 과장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듣고 싶어. 그런 삼촌들의 허풍 역시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도 아니까.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르스리’를 읽으면서 삼촌 생각 많이 했거든. 이상한 게 거기 등장하는 삼촌이란 나의 삼촌이랑은 많이 다른데… 그런데도 동일인물인 것처럼 느껴져. 시대적인 배경이 비슷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삶의 흐름이 뭔가 비슷했거든”


“예보보다 빨리 비가 오기 시작하네. 비가 내리고, 몸도 마음도 축축하니… 갑자기 작은 아버지가 생각났어. 어쩌면 보통 사람들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삼촌이란 존재가?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2

천명관 지음

2012년 2월 1일 초판 1쇄 발행(1권)

2012년 2월 20일 초판 3쇄(1권)

2012년 2월 6일 초판 1쇄 발행(2권)

2012년 4월 10일 초판 4쇄 발행(2권)

중고로 게다가 따로따로 구입해서 판본이 서로 다르다

위즈덤하우스(예담)

'고래'를 읽고 난 후에 천명관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 이게 아마도 세 번째쯤?이었나... 그래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고래'와 비슷하나 '고래'는 서사적이고 큰 스케일이 느껴지는 반면에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기분을 내게 해준다. 두 가지 다 공통점이라면... 왠지 주변에서 흔하게 듣던 이야기들이라는 점. 어떤 이들은 이 점을 들어 편하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문학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전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엔딩이었는데...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해피 엔딩이라 놀랬다. 뭔가 김 빠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딱히 잔인한 결말을 원한 건 아니었다. 다만 브루스 리의 위 태위태(?) 삶이 늘 그런 불길한 마지막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해서... 어떤 면에서는 아주 현실적인 마무리라고 볼 수 있다.


Billy Elliot The Musical (Original Cast Recording, 2005)

The Letter (by Original Cast Recording): 3분 47초

작사: Lee Hall

작곡: Elton John

2000년 영화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을 각색.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The Musical)의 삽입곡

런던에서 이 뮤지컬을 보기 전까지 영화도 안 봤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사라졌기도 했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마치 본 영화인 것처럼 생각했었다.

애초에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기로 했었고, 어떤 뮤지컬을 보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알고 보니 인기 있는 것들은 다 매진이었다. ('빌리 엘리엇'은 아마도 서울에서 미리 예매했던 것 같다) 사실 난 빌리 엘리엇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뭐랄까... 너무 평범한 스토리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던 터라...

공연 장소인 Victoria Palace Theater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꽤 오래된 극장이라는 거는 그냥 느껴지는데, 그러면서도 뭔가 정교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주었다. 거의 맨 앞줄에 앉아서 보았는데, 바로 뒷자리부터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공연 끝나고 나니 시간이 꽤 늦었었다. 바로 옆의 카페에서 간단하게 늦은 저녁을 먹는데, 그때 이탈리아 맥주(페로니)를 처음 맛보고 참 맛있다고 생각했었다.

공연은 기대 혹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었다. 앞 줄인 만큼 배우들 뛰어다닐 때 쿵쿵 울리는 마루소리가 특히 좋았는데, 발소리에 맞추어 오래된 나무 향이 같이 올라오는 기분도 들고... 다른 뮤지컬에 비해 대사의 비중이 많다고 생각되었는데, 공연 끝나고 나서는 딱 세 곡만 들은 것 같은 기분? 그 세 곡은 'Solidarity', 'The Letter' 그리고 'Electrity' 당시 공연 끝나고, "야, 별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되게 재밌네"라고 평가했던 것 같다.

이 곡 'The Letter' 부분에서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영어가 짧아 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음에도, 또 정확학 가사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눈물 흘리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꽤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바로 CD를 사는데, 음악만으로는 그렇게 큰 감흥이 없다. 그래서 이건 직접 공연을 보거나, 공연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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