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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17. 2017

바깥에 남겨지는 것들

It wasn't roaring, it was weeping

왜 그렇게 먹어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멍했고, 배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어제 아침이 일이다. 책상 위에는 피자 한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바짝 마른 입안을 물로 축이며 다시 어제 일을 생각한다.


점심을 늦게 먹었다. 게다가 같이 간 선배는 내 그릇으로 음식을 덜어 낸다. 그렇게 1.5인분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는 술이나 한 잔 하고 집에 가자고 한다. 배 불러서 먹지도 못한다고 술만 마셔야 한다고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치킨 집에서 나온 닭강정을 소주 한 잔에 한 조각씩 먹어 재낀다. 먹는 일이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먹는 데 집중한다. 그것이 끝도 아니었다.


LP바에서 혼자 남아 맥주에 과자를 버릇처럼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때도 멍했던 것은 아닐까... 작년 이맘때쯤에 생각했던 레너드 코헨의 노래를 크게 들으며 초점 없이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피자를 한 판 샀다. 그리고 방에 돌아와서는 그걸 혼자 다 먹었던 것이다. 입안이 다 헤져 있는 걸로 보아서는 그냥 입에 밀어 넣은 것 같다. 혼자 방에 앉아서 피자를 먹으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기억도 안 난다. 가끔 그런다. 계속 무언가 먹고 또 먹고... 그렇게 한바탕 진상을 부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기분이 찾아든다.


어쩌면 먹는 것은 감정을 소비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싶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하는 것은 주로 누군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게 가끔은 쉽지 않다. 내 감정을 소비하기 위해서 나 역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먹는 것도 행동의 방향은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지나고 나면 배설이 된다. 남겨지는 것은 온전이 '나'만 이었으면 한다. 아무 감정도 묻지 않은 깔끔한 '나'로 남았으면 좋겠다.


자세히 살펴봐야 언뜻 볼 수 있는 좌절감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1판 1쇄 2017년 6월 28일

1판 4쇄 2017년 7월 26일

문학동네

오랜만에 일로 홍대 쪽에 나갔다가 경의선 숲길 책거리에서 구입했다. 여름부터 서점에서 이 표지를 보다가 결국 한 겨울에 읽게 되었다. 구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셈이다.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며칠 전 우연히 본 기사 때문인데,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읽으며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슨무슨 문학상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을 믿지 않으면 또 무엇을 믿어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나오키상' 같은 경우는 비교적 내 취향과 맞는 것 같아 한 때 꼭 챙겨 읽었던 적도 있다. 조금씩은 다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 거기에 소설가들이 뽑았다고 하니...

장편의 경우는 다른 호흡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안의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는 듯 천천히 흐르는 호흡은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이렇게 감정의 깊은 곳까지 찔러 대는 글을 보면 도망치고 싶어 지는데, 지금이 그러하다. 며칠 동안 내내 운 것 같은 기분.... 

7편의 단편 중에서는 '가리는 손'이 압도적인 작품이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The Voice Album Cover(2003)

Weeping (by Vusi Mahlasela): 5분 38초

작사/작곡: Dan Heymann

이 곡은 1987년 'Bright Blue'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밴드가 처음 발표한 곡으로 반인종차별 운동을 대표하는 저항 곡이며, 남아프리카에서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곡이다.

유튜브에서 Bright Blue의 곡도 찾아볼 수 있으며, Vusi Mahlasela를 비롯한 다양한 버전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Vusi Mahlasela의 라이브 버전을 좋아한다. 대부분은 남아프리카의 뮤지션이라 잘 모르는데, Josh Groban이 2006년 앨범 'Awake'에서 커버한 것이 그마나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Vusi Mahlasela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민 가수쯤 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아니면 대중 음악계의 넬슨 만델라라고 해야 하나? 서구 기준의 장르 구분으로는 포크 음악이라고 봐야 하지만, 곡들을 들어 보면 아프리카 음악의 특성이 멜로디에서도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최근에 구하게 된 앨범이지만 거의 매일 듣고 있다. 물론 가사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닌데,  노래 가사의 경우 문장의 시작과 끝도 애매하고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처음 이 곡의 가사를 접하고도...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 것도 같은데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바깥은 여름' 전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잘 어울린다.

https://youtu.be/71T0qiINg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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