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고독이란 사람들이 그 속에 머무는 장소임을. (중략) 고독은 가치 없는 체험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의 심장에 그대로 가닿는다는 것을. 외로운 도시에서 경이적인 것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20~22쪽.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2017)
언제부터였던가.... 일 년 중에 12월이 가장 나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나는 힘들다. 나에게 12월은 고독이다. 그래서 보통 12월의 마지막 주에는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지금은 굳이 12월이 마지막 주가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지만...
올봄에는 '외로운 도시'를 읽으면서 외롭지 않았었다. 거의 2달 동안 천천히 읽어 나갔다.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따로 자료를 찾아보면서, 여기저기에 메모해 가면서, 때론 그 순간의 딴생각을 적어 가면서 그렇게 천천히 읽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다. 이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이 책을 다시 펼쳤다.
구글 맵과 구글 어스를 통해 첼시 호텔을 찾아보기도 했다. 글을 읽으며 상상하는 것들을 실제로 보고 싶은 욕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혹시 상상력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사진의 시대에 길들여진 자연스러운 행동일까? 많은 경우 상상이 훨씬 근사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헨리 다거(Henry Darger)의 삶과 그림은 한편으로는 공포였으며 한편으로는 거의 완벽한 일체감이었다. 당장은 스크린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그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라나스가 앤디 워홀을 쏜 장면이 부조리하게 다가오면서 동정이자, 동정이 아닌, 이해가 되지만, 또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장면 장면을 영화 찍듯이 하나하나 내 머리 속에 그려 나갔다. 그렇게 나는 혼자이지 않았다.
But.... I am only playing solitaire.
3월 29일. 경의선 숲길, 책거리에서 7장을 읽었다. 산책하는 사람들, 놀러 나온 사람들도 적당히 있고, 따뜻하던 해는 어느새 가려지고 바람이 쌀쌀하게 분다. 고독에 대해 읽고 생각하다 보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나쁘지 않다. 그것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353쪽. 나의 메모)
원래 책에 뭔가를 쓰며 읽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책"이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줄 긋고, 쓰고, 때론 책을 읽다가 전화 통화하면서 메모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내 이전의 관행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 첫 결과물이다. 다량으로 인쇄된 한 권의 책이지만, 이제 이 책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 나에게는 책의 탄생... 그렇게 떠오르지 않았던 마지막 영감. 이제 퍼즐은 완성되었다. 2017.3.29 (마지막 페이지, 나의 메모)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Olivia Laing) 지음
김병화 옮김
초판 1쇄 2017년 1월 16일
도서출판 어크로스
책을 좀 지저분하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첫 책. 지금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책을 깨끗하게 읽는 편이었다. 밑줄을 긋는 것과 같은 다른 행동이 들어가면 흐름이 끊기게 되는 것을 싫어해서다. 이 책의 경우는 다 읽고 어딘가에 두어서 누군가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대한 내 생각과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히 이것과 관련하여할 이야기가 많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나를 거쳐서 조금은 다른 책으로 태어나는 것을 상상했다.
2017년의 나를 지배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서 올해 안에 이렇게 글과 음악을 남기게 되어 다행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올해 포스팅의 상당 부분이 이 책에게 빚져있다. Antony and The Johnsons, Edward Hopper, Mon coeur s'ouvre à ta voix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 등등이 이 책을 통해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워낙 광범위하게 뉴욕과 뉴욕의 문화와 예술을 담고 있기에, 피해가기 어렵기도 하다.
초반에는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서 따라가기 어려웠다. 쉽게 풀어서 쓰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데, 중반 이후 점차 적응해 가면서는 괜찮아졌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구성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이미 이 책 안에 음악과 이미지가 넘쳐 나기 때문에 내 스타일로 곡을 붙이기는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아이튠즈의 지니어스 믹스를 돌리다가 찾아냈다.
Solitaire (by Sheryl Crow): 4분 43초
작사/작곡: Neil Sedaka, Phil Cody
1994년 발매된 카펜터스(The Carpenters) 헌정 앨범 'If I were a carpenter'에 일곱 번째 수록곡이며 셰릴 크로(Sheryl Crow)가 불렀다.
스탠더드 팝의 대명사인 카펜터스의 곡들을 당대의 얼터너티브 밴드가 커버했다. 트리뷰트 앨범 중에서는 제법 쓸만한 앨범이다. 어떤 평론가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수작으로 평가받지만... 솔직히 카펜터스와 얼터너티브와의 넓은 간격 때문에 '헌정'의 의미가 맞는지 의심이 간다.
이전에는 Shonen Knife가 부른 'Top of the world'를 자주 들었다. 일본식의 독특한 발음과 함께 펑크스타일이 좋아서 가끔 기분 전환용으로 들었다. Sheryl Crow의 'Solitaire'가 흘러나올 때, 느낌이 좋아서 그제야 곡명과 뮤지션을 확인했는데, 거칠고 침잠된 느낌이 좋아서 다시 '외로운 도시'를 꺼내 들게 되었다.
'If I were a carpenter'란 제목의 노래도 있다. Tim Hardin이란 미국의 포크 가수의 곡인데, 곡이 좋아서 이후 많은 가수들이 커버했다. 1993년에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도. 하지만 이 앨범과는 관계없다.
'Solitaire' 역시 카펜터스의 오리지널 곡이 아니다. 닐 세다카(Neil Sedaka)란 영국 가수가 작곡한 곡인데, 1972년에 녹음했지만 정작 그의 곡은 1974년에 발매가 되었고, 그 이전에 다른 가수들에 의해서 발매가 되었는데, 그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가 1973년 가을에 발매한 버전이었다. 카펜터스는 1975년에 발매된 여섯 번째 앨범 'Horizon'에서 이 곡을 불렀다. 좋아해서 부른 건 아니고, Karen Carpenter의 보컬 역량을 위해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트 성적은 그들의 곡 중에서 가장 안 좋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고 한다.
'Solitaire'는 카드 게임을 말하는데, 윈도 OS에 기본으로 깔린 게임이라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저 단어가 '고독' 뭐 이런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프랑스어로는 '고독한', '외로운'이란 뜻이다. 곡의 가사에서도 주인공이 게임을 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