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틀렸다.
크든 작든 일 년에 한 번은 꼭 감기몸살을 앓는다. 그때마다 생각하는데, 이런 찌질한 아픔이 제일 귀찮다. 나름 빨리 극복하려고 잘 안 먹는 약도 먹어 가면서 방 안에서 옷을 두세 겹 껴입고, 이불 덮고 땀을 흘려보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올 때 되면 오고 갈 때 되면 가는 것 같다. 혼자라서 가장 서러운 게 몸 아플 때라고들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며칠 전 그러니까 이렇게 찌질하게 아프기 전에 술자리를 가졌는데, 얘기하다가 의료 보험 얘기가 나왔다. 내가 아직 나의 의료보험 상태를 모른다고 하니까, 같이 있던 실장이 빨리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냥 넘어갈 걸 어쩌다 보니 '나야 뭐 어디 아프게 되면 바로 죽어야죠'라고 말해 버렸다. 그런 실없는 소리에 목소리를 키워가며 (아마도 나를 위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실장을 보니 '마음이 따뜻하다는 건 저런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다음 날 저녁에는 지훈이가 전화하면서 감정을 쏟아 냈다. 처음에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점점 대화가 꼬이면서 내가 자꾸 헛발질을 하게 되고, 지훈이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나는 입을 다물고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이 '원하는 것 없음'일 수 있다는 것을 자주 까먹게 된다.
그러다 추위가 왔다. 몸이 추운 것인지, 마음 한 구석이 얼어붙은 것인지.....
추위도 때가 되면 간다. 감기도 알아서 나갈 것이고, 사람도 그럴 것이다.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Se Equivocó La Paloma(The dove was wrong) by Kim Kashkashian & Robert Levin: 2분 17초
작곡: Carlos Guastavino
작시: Rafael Alberti
Kim Kashkashian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비올리스트다. (리쳐드 용재 오닐과 같은 종목의 선수인 셈이다.) 2013년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본 앨범은 2007년에 발매된 앨범인데,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한 앨범이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에서 선구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들인데, 앨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앨범 대부분은 성악곡이다. 워낙에 감성적인 연주로 유명한 Kim Kashkashian여서 일부 곡들은 성악곡보다 더 좋은 것들도 있다. 이 앨범을 언제 어떻게 구매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한창 피아졸라를 들을 때, 같이 장만한 것 아닌가 싶은데, 주로 밤을 새우고 난 후 동틀 녘에 듣곤 했다. 좋은 앨범이다.
위키피디아에서 Kim Kashkashian 항목의 첫 번째 줄에 'not to be confused with Kim Kardashian( 킴 카다시안과 혼동하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헷갈릴 일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과거에 몇 번 혼동한 적이 있다.
앨범 표지 이미지는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의 2004년 영화 'Notre Musique(Our Music)'의 한 장면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2004년 칸느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되었다.(요즘엔 영화 잘 안 보지만, 이 영화가 매우 궁금해졌다. 이 앨범 커버로 사용된 저 이미지도 좋고, 영화 포스터도.... 마음에 든다.)
곡의 작곡자인 Carlos Guastavino는 20세기 아르헨티나의 선구적인 작곡가로 손꼽힌다고 한다. 작품의 대부분이 피아노와 성악으로 구성된 곡들이며, '팜파스의 슈베르트'라고 불린다. 이 곡 역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한다.
문득 피아졸라가 생각나서 이것저것 듣다가 이 앨범에 꽂혀서 계속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