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it's going to rain today
한동안은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약간 붕 떠있는 기분... 그저 먹고 자고 하는 생명 유지 활동만 하고 있었다. 굳이 일부러 멍 때리지 않아도 그냥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아직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데몰리션(장 마크 발레 감독. 2015년작)'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아니면 MRI?)를 찍었는데, 의사가 놀라면서 '당신 심장이 이만큼이나 없다'라고 주인공이 딴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지금 상실감에 빠져 있구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상실감이구나... 그러니까 울지도 못하고, 넋이 나간 것처럼... 말을 해도 내 말이 아니고, 생각을 해도 생각이 빈 것 같은.... 아프지도 않은 그런 진공 상태...
언젠가 다시 한번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또다시 그런 상태가 오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상실감을 찾았다. 영화의 말미에 보이는 한 번의 울음. 그때 그가 깨달은 것 역시 상실감이지 않았을까....
먼저 온 것은 무의식 영역에서의 상실감이라면 뒤에 것은 의식 영역에서의 상실감일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을 잃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울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러다 이제 잃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런 것들...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라거나 '나 이런 사람이야'와 같은 믿음. 이런 것은 자아 혹은 자신감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깨달음은 그런 것을 사정없이 박살 낸다. 그게 한 순간은 매우 큰 아픔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매우 평온한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이런 걸 '열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어렴 풋이 알아 버렸다. 살아오면서 쌓아 올린 거대한 '나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멈춰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게 쉽다면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지만..)이 될 수 없고,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처럼 생각해 본다. 오늘쯤 비가 오면 좋겠다....
I think it's going to rain today (by Randy Newman): 2분 55초
작사/작곡: Randy Newman
1968년 발매된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데뷔 앨범에 10 번째로 수록된 곡.
하지만 이 앨범에 수록되기 전 1966년에 Julius LaRosa라는 가수가 발매했었고, 1966년과 1967년에 Judy Collins, Eric Burdon 등에 의해 커버된 바 있다.
17살 때부터 프로 작곡자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이후 연주뿐만 아니라 리코딩 아티스트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1980년대에는 영화음악 작곡자로도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유명한 작품이 '토이 스토리'다.
그의 데뷔 앨범은 비평 쪽에서는 환영받았지만 쫄딱 망했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앨범부터는 대중적인 성공도 거두게 된다.
그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커버된 곡 중의 하나인데, 차트에 오른 것은 거의 없다. (UB40가 있는데, 오히려 내게는 가장 안 좋은 커버다. 친구들, 이 노래는 그렇게는 좀 아닌 것 같아.) 그냥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노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들을 때는 '이게 뭐야?'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뒤늦게 알게 된 평양냉면 맛처럼 쉽게 떨치기가 어려운 마성이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음악 마니아들에게는 Claudine Longet의 커버가 조금 더 사랑받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Randy Newman의 기묘한 목소리가 더 좋다. 지금 이때에 딱 좋다. (오늘 비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까...)
비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윤대녕의 어느 작품에 계절이 끝날 때쯤 꼭 비가 온다는 언급이 있는데, 같은 의미로 비가 오면 새로운 계절이 온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