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I fall in the harbor
갑자기 기온이 올라갔다. 밖을 돌아다니는데, 살짝 덥다는 생각이 들더니... 2년 전의 일들이 소환된다. 그때도 더웠다. 이맘때 쯤이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정리해 보니 딱 맞다. 2년 전... 2016년 3월 15일, 지금 이 시간 나는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고 있었다. 죽을 자리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여정의 끝. 나는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화본역에서 정동진역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를 탔다.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기차에서 내리면 또 걸어서 북쪽으로 올라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걸었지만,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일 무렵, 언덕의 불빛들이 나타났다.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스쳐 지나가는 그 풍경을 아쉬워하며 한참을 뒤돌아 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저기는 어딜까?
그때...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바닷가 언덕의 옹기종기 모여 발하는 불빛을 보면서 어쩔 수 없구나... 그냥 살아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거기... 그곳은 묵호항이었다.
2년 후... 나는 아직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것들은 여전히 망가진 채지만 지금 살아가는 것은 과거의 복원을 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미 익숙해진 일상의 시간들은 살아가는 의미를 잊게 만든다. 어쩌면 그런 강박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의식과 멀어지는 것이 진짜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저 살아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 빛이 나를 구원할 수 있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2년 전...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Twilight (by Antony and The Johnsons): 3분 49초
작사/작곡: Anohni
2000년 발매된 Antony and The Johnsons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의 첫 번째 곡. 이 앨범의 곡들은 1998년에 리코딩이 되었는데, 공식 발매는 2000년이다. 싱글로 발표된 곡은 없지만,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Cripple and the Stafish'란 곡이다. 역시나 아름답다.
이전에 I need another world란 글에서 Anohni에 대해서 조금 설명한 바 있다.
Antony and The Johnsons나, Anohni의 음악을 아트팝(Art Pop), 챔버팝(Chamber Pop), 바로크 팝(Baroque Pop) 혹은 아방가르드 팝(Avant-Pop)으로 분류하는데, 사실 이런 장르의 음악은 예전에 잘 안 들었다. 왜냐하면 대체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멜로디는 해체되거나 불협화음에 가까운 소리, 게다가 비트도 없거나 역시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 실험은 인정하나 실패한 실험은 실패한 실험일 뿐, 억지로 즐겨 감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감당이 된다. 그리고 조금씩 깊어지면서 그 속살의 순수함을 느끼면서부터는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곡(Twilight)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늘 듣는 팝 음악과는 전혀 다른 질감에 '역시 내 취향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중반부의 휘몰아치는 소리를 지나고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픔. 물리적인 아픔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묵직한 감동... 2년 전 기차에서 바라보던 바닷가 언덕의 불빛들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