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번거린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생각이 많아졌다. 매일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을 꾸다가 깨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눈을 감고 잠드는 일이 살짝 불안해진다.
내일을...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워진다. 마음 한 구석에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게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지. 하지만 그건 오늘의 일이다. 오늘의 일은 하지도 못하고 내일의 일로 걱정만 하는 상태... 그게 문제가 아닐까.
며칠 동안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이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혹은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 답은 내렸다. 배우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예측하기 위해서다. 미리 안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어쩌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어떤 것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잘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고, 때론 그 상상이 그대로 되는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만약 그 상상이 비극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걸 막아야 한다. 그래서 그 비극적인 일을 막았다고 하면 결과적으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예상은 틀리게 된다. 그러니까 예측을 잘하는 전문가란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러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그걸 원해서, 그게 좋아서 자세히 알아보고 배우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은 불확실한 존재'라는 심증은 굳어만 간다. 어디선가 멈췄어야 하는데....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은데,
가까이 다가온 바람 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두리번거린다.
처음을 알고 싶어서... 안다고 좋을 것도 없을 텐데...
두리번거린다 (by 양희은): 3분 40초
작사/작곡: 김민기
1979년 발매된 양희은의 앨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앨범에 7번째 수록곡. 1979년에 발매된 앨범에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으나, 1984년에 재발매된 앨범에는 그 곡이 없다. 해당 노래의 순서에 따라서 '두리번거린다'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앨범을 구입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으나, 고등학교 시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동네 단골 레코드 가게에서 보자마자 구입을 했었고, 오랜 기간 애지중지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앨범의 곡들은 모두 김민기의 곡이나, 앨범 뒷면에 보면 김아영, 양희은 등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당시 김민기 자체가 금지된 상황이라 이렇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하루 시장에 풀린 적이 있는 김민기의 앨범을 친구가 갖고 있었는데, 커버거 너덜너덜한 그 음반의 가격이 당시 금액으로 10만 원이 넘는다고 자랑을 했었다. 지금으로 치면 100만 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후에 김민기의 앨범도 재발매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김민기 또한 대중매체에 잘 나오지 않는 바람에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나무 위키의 한 설명대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내용적인 면(노랫말, 감성, 메시지)에서 혁명을 가져온' 인물이다. 물론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평가 역시 '그러고도 남는다'라고 말하고 싶다.
작년 촛불집회 때 양희은이 불렀던 '상록수'도 이 앨범에 있는데, 곡명이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가 처음 들었던 것이 이 앨범을 통해서였기 때문에 한 때는 '상록수'라는 제목이 낯설었었다. 김민기 때문에 양희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줄어드는데, 당연히 이후에 또 다른 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앨범은 내가 꼽은 최고의 앨범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를만큼 좋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사운드가 근사하다거나, 화려하다거나 그런 것 없이, 오로지 김민기의 곡과 양희은의 전달력 만으로 이루어진 음악의 세계는 어딘가 다른 세상의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들려준다. 그것이 이 앨범의 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