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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Mar 22. 2018

그래, 소설도 예술이었어

sleep well, beast; you as well, beast

바람이 셌다. 봄이 왔는가 싶은 마음을 날려 버리듯이... 바람 소리가 벽 너머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한 밤 중에 책을 펼쳤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압도적이었다.

한동안 문학은 문학이라고, 소설을 소설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아, 그렇지! 소설도 예술이었지. 그래, 소설도 예술이었어. 그림과는 다르면서 그림과 같은 얘기를 할 수 있고, 소리가 안 나면서도 어떤 소리를 계속 외쳐대는... 글로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


기괴하고, 환상적이고, 잔인한 그런 느낌... 사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서성 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계속 두들겨 맞았고,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좀 더 아프기를, 좀 더 세게 때려 주기를 바라면서 책장을 넘겼다. 아무것도 아닌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한 줄, 한 줄이 날카롭게 상처를 내고 있었다.


이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까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쁘지 않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머리 속에 넘쳐 나는 이미지들. 헨리 다거의 그림들... Antony and The Johnsons의 노래들... 불편해서 도망가려고 마음먹어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기분. 아름다운 것들은 그 자체가 폭력적이다.

헨리 다거(Henry Darger)의 그림들

어쩔 수 없이 내 모습이 보인다. 거울을 통해서 혹은 꿈속에서... 내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그래서? 내 앞에 있는 나는 누구? 계속 묻지만 물으면 물을 수록 나는 멀어져 간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나는 아닐 거야... 라며 회피한다. 잔인해... 너무 가혹해... 그래도 울지 않았다.


어느새 날이 밝았지만, 바람은 여전했고, 눈이 오기 시작했고, 오후가 되면서 비가 되었다. 

책을 덮었다.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몸 어딘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에...


1. 책 표지 그림은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약간 아쉽다.

2. 영화도 있다는데, 유튜브로 소개된 영상들을 보니... 역시나 아쉽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럴까?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도 훨씬 더 좋은 표현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 영화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3. 책 읽는 내내 Antony and The Johnsons의 노래들이 귀에 아른거렸는데, 요즘 너무 울궈먹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배제하겠다고 마음 억었는데, The National의 앨범이 제목도 그럴듯하고 해서...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은데 역시나 목소리는 아쉽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우아한 것.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역시 Anohni다.

4. 많이... 춥다. 


채식주의자 (한강, 2018년판에는 '연작소설'이 아닌 '장편소설'로 표기되어 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초판 1쇄 2007년 10월 30일

초판 62쇄 2018년 2월 26일

창비

표지그림: 에곤 실레(Egon Schiele) '네 그루의 나무(Four Trees, 1917)'

내 기억으로 한강이 등장할 때쯤에 한국 소설 읽기를 그만두었던 것 같다. '검은 사슴'을 샀던 것도 같은데 읽은 기억은 없다.

한국 소설 읽기를 그만둔 것은 대체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한창 일에 몰두할 무렵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날 것으로 찌르는 것 같은 그 통증이 힘들었다. 어쩌면 지금은 오히려 그런 자극을 즐기는 피학적인 성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는 화제에도 왠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려도 안하도 있다가... 비 오는 어느 오후, 술 한 잔 걸치고 난 후 서점에 들렀다 충동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 내내 읽었다. 세찬 바람보다 더 날카로운 감정의 공격에 나도 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은 꿈이었던가....


Sleep Well Best Album Cover (The National, 2017)

Sleep Well Beast (by The National): 6분 31초

작사/작곡: Matt Berninger, Carin Besser/Aaron Dessner, Bryce Dessner

미국의 인디 밴드인 The National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60회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앨범(Best Alternative Music Album)을 수상했다. Sleep Well Beast는 앨범 타이틀 곡이자 마지막 트랙이다.

사실 어느 한 곡을 뽑기보다는 앨범 전체가 '채식주의자'와 잘 어울린다. 처음에는 가사까지 생각해서 첫 번째 곡인 'Nobody else will be there'를 생각했는데, 앨범 전체를 생각해서 앨범 타이틀 곡을 뽑았다. 그러니 특별히 이 곡에 집중할 필요 없다.

The National은 1999년에 결성된 인디밴드로, 미국 인디 음악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하지만 굳이 인디음악으로 한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곡을 먼저 만들고 난 후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 스타일이라고 한다. 특히 이들의 가사(Matt Berninger가 전담)에 대해서 "dark, melancholy and difficult to interpret"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고 하니... 나의 선택이 제법 그럴듯한 것 같다.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앨범 중의 하나이고, 과거의 앨범도 열심히 듣고 있으니 조만간 이들의 다른 곡도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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