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조건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고 하다가 문득 정리해 놓은 표를 보니, 브런치를 시작한 이래 글을 공개하지 않고 넘긴 달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서랍을 열어 보고, 하나를 골랐다. 하지만 애초에 얘기하고자 했던 생각은 벌써 까맣게 지워지고 말았다.
조만간 또 제법 큰 생활의 변화가 찾아올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두렵다거나, 설렌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을 따름이다. 가끔씩 돌이켜 보면 늘 비슷한 양상의 전개가 반복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듣는 과정도 비슷하다. 팝/록 음악을 듣다가 조금 더 강한 록, 그러니까 메탈 등등으로 빠지다가, 좀 더 정교한 쪽으로 취향이 변하다가 다시 단순한 스타일로, 인디로 빠지게 되는...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생활도 그렇다. 자라면서 거의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는데, (엄청 싫었지만) 어디든 자리 잡고 나면 금방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동네를 생각하게 되는... 약간 신기한 것 중의 하나는 다니면서 어떤 동네에 대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 결국 그 동네에서 살게 되곤 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듯이...
동네에 대한 느낌도 비슷한 패턴이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동네 구석구석 걸어 다녀 보고, 처음 보는 것들이 신기하고 좋아서 혼자서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익숙해지면 그저 그런 듯이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동네의 한 풍경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떠날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그럴 때면 동네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고.... 한 곳에서 몇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느낌은 어떨까, 새삼 궁금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유목민 종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이기도 하다.
충분과 만족은 다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면 설명이 거의 같다.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중요한 것은 넉넉하다는 것. 만약 그것이 여유를 말하는 것이라면 만족이란 충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를 보건대 우리의 마음은 어떤 넉넉함이든 따라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딱 맞는 만큼'이라 해도 어려운 조건일 것 같은데... '넉넉하다'라니...
결코 채워지지 않을 넉넉함에 대해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Never be enough'는 (좀 많이) 우울하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Vol.2 - 상품화된 세계 속의 인간 (계간)
바다출판사
발행: 2018년 4월 10일
기존의 스켑틱(Skeptic)을 보다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잡지 중에 우먼카인드(Womankind)는 패스하고, 보기로 한 잡지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지난달에 창간호를 구입했고, 바로 4월에 2호를 접하게 되었다.
일단 기대보다는 썩 훌륭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일상을 철학하다'이라는 문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일상을 철학한다기보다는 미시적인 철학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철학이라는 게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하는 하나의 통일된 사고 체계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이 잡지에서는 반대로 통일된 사고 체계가 아니라 그냥 다양한 그리고 소수적인 시각을 미세한 일상에 빗대어 풀어놓는 느낌. 결과적으로 '철학한다'기 보다는 '사색한다'는 정도인 것 같다. (나아지겠지...)
이 번호의 주제인 '상품화된 세계 속의 인간'은 항상 관심 있는 주제여서 기대가 컸었는데, 살짝 아쉬움은 있다. 상품화에 대해서 고민할 때 출발점은 '생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로 생산의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춘 글들이 많았다.
잡지 1~2종은 늘 보아왔었는데, 지금은 3종이나 된다. '매거진 책', '스켑틱', 그리고 '뉴필로소퍼' 당분간은 모두 봐보고... 다른 잡지가 추가되면 그때는 하나 빼야 할 것 같다.
Never Enough (by Loren Allred): 3분 27초
작사/작곡: Benj Pasek & Justin Paul
2017년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의 삽입곡. 영화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Jenny Lind)가 첫 미국 공연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다. Jenny Lind는 실존인물이며, 실제로 'The Swedish Nightingale'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배우 역시 스웨덴 출신의 배우 Rebecca Ferguson이 연기했는데, 노래는 로렌 올레드(Loren Allred)가 불렀다. 다른 곡들은 배우가 직접 불렀는데, 이 곡만은 립싱크였다. 그런데 Loren Allred가 이전에 그리 주목받던 가수는 아니었다. 2012년 블라인드(?)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 Season 3' 출연하여, 라이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 그 후에 특별한 활동(혹은 성공적인 활동)은 없는 것 같았는데, 이 곡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Rebecca Ferguson 역시 이 역할을 위해 한 달 동안 보컬 레슨을 받았는데, 노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안무를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동료가 이 영화를 꼭 보라(근래 들어 최고의 영화라고..)고 챙겨서 보았는데, 한 번에 다 보지 못했다. 중간중간에 왠지 마음이 덜컥하는 부분들이 있어 중간중간 끌 수밖에 없었다. 특히 '차별'에 대한 장면들이 특히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이 노래 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뭐 이런 노래가 있어?라고 감탄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노래가 나중에 따로 오디오로만 들으면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피치 퍼펙트 2'의 'Flashlight'가 그런 경우였는데, 영화에서는 소름이 돋을뻔한 노래였는데, 나중에 사운드트랙으로만 들으니 '뭐야?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도 조금 그렇다. 연출 자체가 사전에 기대감을 주고, 배우의 동작 안무나, 리액션 컷 등이 심리적으로 곡의 효과를 증폭시켰다. 그렇다고 오디오가 폭망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노래를 그다지 애정 하는 편이 아니라... 이 곡은 비디오와 함께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곡의 가사는 욕망이나, 물욕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의미 없어요'라는 사랑 노래인데, 이후 전개의 복선 같은 의미의 노래다. 영화와 달리 실제 제니 린드와 P.T Barnum은 썸 타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한다. 제니 린드는 미국 투어 말미 중에 피아노 연주자와 결혼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며, 바넘과의 사이도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라고 전해진다.
호기심에 위키에서 'Never enough' 항목을 찾아보니, 16곡이나 있다. 가수들의 면면을 보니 록, 메탈의 비중이 상당하다. 어쩌면 '탐욕(혹은 불만족)'은 인간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