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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Nov 24. 2015

Walking in a winter wonderland

무신론자의 크리스마스

나는 자랑스러운 무신론자다. 말 그대로 내가 무신론자인 것이 다행이고, 좋다. 만약 내가 종교를 갖고 있었다면, 100% 장담은 못하지만 과격주의자 혹은 순수 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마디로 내가 지금 저주하는 류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가 좋은 이유는 음악 때문이다. 비록 내가 온갖 장르의 음악을 거부하지 않고 듣는 편이지만, 그래도 듣기 편하고, 예쁜 음악을 좀 더 좋아한다. 캐럴은 그런 면에서 내 취향과 잘 맞는다. 대부분의 음악들이 따뜻하고, 밝고, 경쾌하다. 조용한 건 조용한 나름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사랑 노래가 아니라는 점. 너무나 많은  대중음악이 사랑 얘기에 편중되어 있어서, 아닌 곡들을 찾기가 힘든데, 캐럴은 기본적으로 그 범주에 벗어나 있어서 좋다. 나 혼자서는 한 여름에도 캐럴 음악을 자주 듣는다.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프로듀싱 한 'A Christmas Gift For You'는 내가 아끼는 음반 중의 하나다. 참여한 뮤지션도 딱 좋고, 소리도 좋고, 곡도 좋다. 좋은 곡을 객관적으로 결정하는 나만의 방법 중의 하나가 얼마큼 많이 커버되었나  찾아보는 건데, 이 방면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 송을 따라갈 일반 곡이 거의 없다. 지금이라도 음원 사이트에서 Winter Wonderland를  검색해보면 못해도 1,000곡은 나올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특정 종교의 행사 범주를  뛰어넘은 지는 오래다. 그것이 종교 단체에 의해서 건, 기업에 의해서 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일 년을 보내는 시점에서 그래도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조금은 넓은 아량으로 품어 줄 수 있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규칙 속에서 복종해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번 일탈의 기회가 주어지는 측면(알렝 드 보통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설명한 것처럼)에서도 나쁘지 않다.


조금 즐거워 보자. 일 년 내내 우린 너무 찌들어 살았다. 학교에, 직장에, 때론 가정에 갇혀 살았다. 강제로라도 정말 즐겁게 한 시즌 즐겨 보자.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 살짝 부딪혀도 서로 잡아 주고, 웃어 주고... 꼴 보기 싫은 선배라도 괜찮은 구석  하나쯤은  찾아봐 주자. 헤어진 연인이 다름 사람을 만나더라도 축복해주자. 혼자라도 '아, 시원하다~'하면서 가벼운 존재감을 뽐내 보자.


내게 축복을 줄 신이 없더라도... 내가 축복해 주고, 우리들끼리 축복을  주고받자. 그래서 지금 이 계절을 원더랜드로 만들어 보자.


*Winter Wonderland (by Darlene Love): 2분 25초

*1963년 11월 22일 발매

*작사: Richard B. Smith

*작곡: Felix Bernard

*원곡은 1934년에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사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예를 들자면 산타, 루돌프 기타 등등)가 없음에도 크리스마스 시즌 송으로  취급(?)되고 있다.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프로듀스 한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에 9 번째로 수록

*앨범에 프로듀서의 이름이 전면으로 나서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만큼 필 스펙터가 서구 팝 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Wall of sound'의 창시자인데, 그 얘기까지 하려면 너무 골치 아프다. 그냥 듣다 보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필 스펙터의 대표 아티스트이자, 대표곡이 바로 더 로네츠(The Ronettes)의 'Be my baby'이다. 바버렛츠가 리메이크해서 모 카드사의 광고에  사용되었던... 이 두곡을 비교해 듣는 것도 재미있다. 취향대로 골라 들어 보시길.

*캐럴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명반('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등 다수 셀렉션에 포함)으로 꼽히는 데, 비록 내가 그런 셀렉션에 회의적이기는 하지만, 이 앨범은 정말 듣기 좋다. 2013년 겨울에는 12월 내내 들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여름에도 듣기 좋다는 것. 실제 이 앨범의 녹음은 8월에 이루어졌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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