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것들
양양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운전을 하던 형님께서 바로 비지스(Bee Gees)의 'Holiday'를 틉니다. 최근에 같이 다니면서 비가 온 날들이 꽤 있었는데, 거의 조건반사입니다. 문득 그걸 깨닫고 '형님, 비 온다고 이 노래 트시는 겁니까?', '왜? 싫나?', '아니오. 생각해 보니, 비올 때마다 이 곡을 들으시는 것 같아서요', '맞다. 좋잖아' 하시면서 재생 모드는 반복으로 바꿉니다.
저는 졸면서 양양에서의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걱정이 많이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시골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인문학 강연'이라니...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분들께서 낯설어하지 않으실까... 하는 걱정이 컸습니다. 여러 가지 세세한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선물은 어떤 것으로 드려야 하나, 간식의 종류는 또 어때야 할까.... 강연 내용은 이미 상황을 고려해서 정한 상황이라 그저 마음에 괜찮기만을 바라야 했고요.
이것저것 변형을 가하려 하다가 일정이 급박한 상황이기도 했고... 해서 하던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해보고 잘 안되면 겸허하게 배우기로 했습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일들이 다 그렇죠. 처음 하는 일이 무조건 잘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하되, 참석하시는 분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마음으로 임하자 생각했습니다.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나서는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무엇보다 나도 편견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이라고 혹은 나이가 많다고 어떨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울러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진 분들이 그저 자기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만 하신 것만으로도, 편견에 빠져서 일을 망칠 뻔했던 것을 구해 주셨으니까요. 그렇잖아요. 누구나 자기 방식 그리고 그것이 제법 먹힌다 싶으면 그걸 고수하려 들잖아요.
가끔씩 순간적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또 이런 재미도 있으니까요... 가능하면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잘 되면 참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숟가락 얹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고, 혼자 다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참 여러 사람이 혼자 일 다했다고 하는 웃픈 상황도 그려지지요. 그런데 잘 안된 일은 꼭 한 사람만 남더라고요. 웃기죠. 그 일에도 여러 사람이 함께 일했을 텐데요.
책임자는 반대겠죠. 잘 되는 일에는 한 일이 별로 없고, 안된 일에는 혼자 나서야겠죠. 이렇게 생각하면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깁니다. 스스로 잘 된 일만 들먹이며, 자기가 다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정말 책임 있는 리더라면 잘 안된 일에 대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할 줄 알겠죠. 아쉽게도 사회에 이런 사람이 참 많이 없습니다. 진짜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잘 안된 일에 딱 한 사람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한 사람을 희생하면 다른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암튼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있네요. 이제는 재가 희생양이 되어도 괜찮아졌다는 것? 뭐 감정적으로야, 힘들 수 있지만, 돈도 명에도 상관없으니 그런 점에서는 참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게 손가락질을 하든, 책임을 떠 넘기든... 편한 대로 하세요.
부디 하나만 당부하자면 나중에 나이 들거든 (욕심 버리고) 나처럼 희생양이 되어 주시면... 저의 희생이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Holiday (by Bee Gees): 2분 52초
작사/작곡: Barry Gibb, Robin Gibb
1967년 7월 발매된 비지스(Bee Gees)의 첫 번째 앨범 'Bee Gees' 1st'에 두 번째로 수록된 곡이다. 같은 해 9월과 10월에 각각 미국과 호주에서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옆에 있는 싱글은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발매된 버전이다. (B-side의 곡이 다르다)
발매 당시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오르는 등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99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삽입되면서 부활했다. 이 전에 1988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하는 지강헌 탈주 인질 사건 당시 지강헌이 이 곡을 틀어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도 도 유명한데, 이명세 감독이 이에 영향을 받아 영화에 써먹은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 당연히 서로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하지 않아서 그냥 짐작만 하던 중 이야기 나누던 분이 검색이 해보고 이명세 감독의 인터 뮤를 찾아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도 곡에 대한 주요 설명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언급돼있으니, 이 곡의 부활에는 이 영화가 대단한 몫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영화 자체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이 곡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중간 '뜨~ 뜨뜨 뜨뜨 뜨~'하는 부분은 싫어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시작 부분에서 약간 잠기는 듯한 느낌은 좋은데, 변환이 너무 생뚱맞아서 그런 것인지... 행진곡 풍의 노래들도 좋아하기 때문에 소리 자체가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암튼 그렇다.
비지스에 대해서야 뭐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랜 시간 동안 이들만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 또 성공한 밴드는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