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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것도 망치치 않아, 난 왼손잡이야

혼자 만의 세상 속으로 잠기다.

by Roke
한 때는 다르다는 것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준이었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싶었다.


다시 돌아간 학교는 심심했다. 먼저 복학한 동기들이나, 후배들은 완전히 취업 모드로 돌변했고, 난 그 사이에서 할 게 없었다. 뭐든지 '척'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척, 공부하는 척, 심지어 공부 안 하는 척까지. 교수님이 소개해준 조그마한 프로덕션에 아무 고민 안 하고 들어 갔다. 생각하면 7년이나 돌아서 갔다.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 왔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모든 걸 던졌다. 일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돈을 벌게 되면서 좋았던 것은 CD를 맘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거의 월급의 50% 가까이 CD를 사는 데 썼다. 어차피 다른데 돈 쓸 일도 없었다. 그동안 갖고 싶었지만 못 샀던 것, 새로 나온 것 등 주말이면 강남역 타워 레코드에 들려서 바구니로 쓸어 담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 게... 그 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을 했다. LP든 CD든 산 앨범은 최소한 열 번 이상은 들었고, 어떤 곡들이 들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그 앨범의 유명한 곡이 아닌 숨겨진 곡들을 소개하며 잘난 척을 하는 게 스스로의 위안거리였는데, 더 이상 음악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리스너가 아니라, 콜렉터였을 뿐이었다.


대체로 그렇다. 무엇이든 좋아서 시작하지만, 그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게 된다. 관성이 되고, 그게 지나쳐 타성이 되고... 일도 그렇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좋아하면 가장 좋은 경우 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서 찾아야 한다. 그게 재미든, 보람이든 간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하는 재미가 밖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건 없다. 내가 그 안에서 찾아야 한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행복 같은 건 없다. 부단히 찾아야 한다. 찾으면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나 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느낀다. 내가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흙을 사랑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왼손잡이 (by 패닉): 2분 33초

*1995년 10월 발매

*이적과 김진표로 구성된 2인조 그룹의 동명 데뷔 앨범의 6 번째 곡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좋은 앨범이다. 물론 나도 완전 동의한다. 다만 음악만을 놓고 보자면 2집의 그로테스크함이 더 끌릴 때도 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적과 김진표가 이 시절의 뒷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예전에 긴가민가 했던 의문들이 조금은 풀린다.

*그중의 하나가 사실 김진표의 역할이었다. 랩과 색소폰을 담당한다고 하던데, 비중이 너무 작아서 곧 깨질 줄 알았다. 물론 이적이 솔로도 독립하는 방향으로. 하지만 김진표의 비중이 작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 둘의 솔로 커리어를 놓고 보면 난 김진표 편이다.

*당시에 '달팽이'에 대한 표절 시비가 있었는데, 글쎄다. 내가 듣기에 일부 소절은 비슷하지만 다른 노래다.

*몇 년 후, 나름대로 국내 10대 보컬리스트를 뽑아 봤었는 데, 난 이적을 포함시켰었다. 지금은? 지금도 별 차이 없다. 당시 잘 나갔던 록 음악 동호회의 게시판에서였는데 사실 다른 친구들에게 이적은 좀 생뚱맞은 선택일 수 있었다. 송창식, 양희은, 안흥찬, 임재범, 전인권, 한영애, 박인수 등등이 지금도 생각나는 이름들이다.


이미 '나'는 남과 다른 존재다.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과 다르다고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어떤 방식이든 나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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