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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May 21. 2020

파리와의 마지막 인사

Dance me to the end of love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은 많이 했지만, 그걸 글로 쓴 적은 거의 없었다. 딱 한번 좀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것도 총 15편으로 (억지로) 만들려고 했다가... 5개에서 끝났다. 뭘 해도 글 쓰는 일이 쉽지 않아서...(아마도 훈련이 부족한 탓?) 열심히 하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가 버리니... 그렇게 됐다. 여기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기를 남겨 본다.


1. 네 번째의 파리 방문.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자꾸 가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게다가 유럽의 도시들은 최소한 겉모양은 거의 변하지 않으니까… 방문할 때마다 금방 익숙해지곤 합니다. 무엇보다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도시’란 ‘사람들의 생활공간’이란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 같은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구경거리 일지 모르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진화해 온 것이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작은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지저분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거리들, 무심히 지나가는 거리의 사람들… 살짝 부는 바람에는 오줌 냄새, 똥냄새가 배어 있고... 이런 게 ‘자유’의 냄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여행자의 ‘오버’라는 생각이 치워 버리긴 했지만요.. 조금 더 가까운 이방인이 되길 바랬습니다.

아침에 바라본 히볼리(Rue de Rivoli) 거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밤의 흔적들이 미처 지워지지 않은 채로… 부스스한 모습으로 깨어있던 거리... 네, 그건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의 흔적이었습니다.

2. 그림을 그리고 인상파 화가들에 관심이 있다면… 파리 교외에 들러야 할 곳이 3군데 정도가 있습니다. 그중의 한 곳. 지베흐니(지베르니). 모네가 말년을 보내고 또 생을 마감한 곳입니다.


대부분의 여행 안내서에 기차를 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되어 있어, 그냥 찾아가기 약간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생각보다는 쉽고 간단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옹역에서부터 모네의 작품이 시작이 되니까요… 베흐농(Vernon) 역에서
 바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며 버스는 1시간에 1~2대가 운행이 됩니다. 거리는 10분 조금 넘는 거리… 요금도 바로 버스에서 내면 됩니다.

풀 냄새 숲 냄새 물씬 나는 지베흐니는 작고 조용했습니다. 모네의 집과 정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만이 그룹을 지어 움직입니다. 그대로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말이죠. 

인상파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단순 미술 사조 이상의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무엇을 그리느냐?’의 문제로 볼 때, 인상파는 그 대상을 신에게서 인간으로, 귀족에게서 서민으로 일대 전환을 이룬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인상파 하면 자연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 자연을 보는 시선 역시 사람의 눈으로 본 것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무엇을 그리느냐는 화가의 고민처럼 무엇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나름의 사진들을 찍어 보았습니다. 이렇게라도 흉내를 내봐야 할 것 같은 기분… 지베흐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3.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이제 먼 과거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로망일까... 마주치고 인사하고 말을 거는 것이 갈수록 쉽지가 않다. 런던도 그렇지만 파리 역시도 온갖 언어들이 난무하여 프랑스어인지, 스페인어인지, 영어인지... 거기에 중국어, 일본어에... 우리말 소리도 종종 들린다. 마치 바벨탑 건설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무질서하지 않다. 언어로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아니니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기도 한다. 종종걸음 혹은 빠른 걸음을 걷는 사람은 이 곳에 사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느리게 걷거나 중간중간 서는 경우는 관광객일 것이고...


평범한 한국인의 눈에 가장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점심시간 풍경. 많은 사람들이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들고 성당 계단, 공원 등에서 먹는다. 혼자인 경우가 많고, 더러는 같이 모여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둘러앉는 경우는 많이 볼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식당이 텅텅 비는 것은 아니다. 식당은 식당대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함께면 함께인 대로... 혼자면 혼자 인대로...


즐기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프랑스 사람들... 우리가 보기에는 일하기 싫어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그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성당 계단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4. 미래를 만난다는 것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시간 여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 처음 갔던 것이 1996년. 촬영차 2주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코디였던 형님이 몽생미셸은 꼭 한번 가봐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언젠가 가보리라 생각했었다.


파리에서 4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라서 매번 파리를 갈 때마다 한 번씩 생각은 했지만 엄두도 못 내곤 했었다. 끝내 못 가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편에 '언젠가는'이라는 다짐을 간직했었다.


이전까지는 몽생미셸을 가기 위해 현지 투어나 한국인 가이드 투어 등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교통편과 호텔을 예약했다. 몽파르나스 역에서 TGV로 3시간 그리고 렌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는데... 9시 5분 기차를 예약했는데, 잠에서 깬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절망적인 상황... 그래도 다음 기차를 타기로 하고 밀어붙였다. 예매는 돌아오는 편만 살았고, 가는 편은 새로 요금을 내고 12시 10분... 드디어 TGV를 탔다.


밤 10시가 넘어서 야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이게 내가 지금까지 간직했던 나의 미래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여행은 그런 것 같다. 나 스스로 그릴 수 있는 미래. 그리고 간직하면 언젠가 만날 수 있는 미래. 이 작은 깨달음이 나에게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나는 또 다른 미래를 간직하고 있다.

5. 먹고... 마시고... 또 먹고... 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놀 것도 없는 상황이 보통 여행이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닐까?


해서… 이번에는 좀 더 편하게 먹고 마시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늘 갖게 되는 아쉬움. 일식당, 중식당은 작은 동네마다 있는데 도대체 왜 한식당은 많지도 않고, 비싸기만 하고, 맛도 다르고 그럴까...


아무튼 여행에서 가치 있는 일이란 결국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 일이 아닌가… 돌고 돌고 돌아서.. 이런 결론을 만나게 되었다.


Careless Love Album cover (Madeleine Peyroux, 2004)

Dance me to the end of love (by Madeleine Peyroux)

Songwriter: Leonard Cohen 

1984년 레너드 코언의 'Various Position'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 곡 역시도 많은 커버가 있었는데 마들렌 페이루의 커버는 싱글로도 발매가 된 대표 커버입니다. 그만큼 좋다는 얘기겠지요.

마들렌 페이루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10대 시절 파리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파리가 잘 어울리는 미국 가수 입니다. 예전에는 촉망받는 재즈가수였고, 지금은 뭐 대가가 된 재즈 가수죠.

2012년 이후 파리를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마지막'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네요... 

https://youtu.be/w8YuzBt13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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