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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an 14. 2019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My soul food - 잔치국수 

사실 요즘의 음식 콘텐츠는 지나치다 싶습니다. 과장은 그런 상황에서의 부작용이겠죠. TV에 나오는 맛집이나 음식들이 사실 그렇게 맛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워크숍을 가서 아침도 못 챙겨 먹고 산길을 헤매다 어느 허름한 시골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죠. 함께 했던 한 친구는 그 맛을 못 잊어 나중에 식구들을 데리고 찾아갔었다더군요. 결과는 참패였나 봐요. 그 친구는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은 믿는 게 아닌가 봅니다'라며 애매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넘쳐나는 콘텐츠와는 별개로 음식은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데는 동의해요. 재료와 조리 방법은 물론이고 시간이 흐르면 요즘처럼 몇 시간씩 기다려 음식을 사 먹는 일도 하나의 문화로 남게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사실 하나의 음식을 꼽는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더군요. 먹는 거 생각하면 할수록 먹고 싶어 지는 것이 많아지더라고요. 역시 식욕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저의 '소울 푸드'는 잔치 국수입니다. 일전에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으로 잔치 국수를 꼽았었습니다. 잔치국수가 최고의 음식이라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서가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자주 먹는 음식도 아니에요. 정말 잔치 때만 먹는 듯이 어쩌다 한번 먹습니다. 사실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먹기에는 너무 가볍잖아요. 보통 혼자일 때 먹게 되는데, 혹시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각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느다란 소면을 먹었던 순간,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된 것처럼 머릿속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짐작으로는 장시에도 소면은 그리 귀한 실재로는 아닐 것으로 짐작하는데, 열 상이 넘어갈 때까지 소면 국수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집에서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를 먹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거든요. 큰 집에 가거나 외갓집에 가거나 혹은 어머니께서도 늘 그렇게 밀가루 반죽하고 밀대로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소면의 존재는 확실히 놀랄만한 발견이었던 것입니다. 


아마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제분회사에 다니고 계셨었는데, 명절 때면 선물용 소면을 몇 박스 받아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고급 제품이라며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시곤 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당시에 소면이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는 늘 한 박스 정도 있었는데,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은근히 기다리는 게 일이었지요. 대체로 손님이 오면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소면이 주는 놀라움도 그렇지만, 아버지가 제분회사에 다니시던 그 시절부터 조금 생활이 안정되기도 했어요. 그 안정이란 것을 '이사'의 빈도수로 생각하는데, 1년에 두 번씩 다니던 이사가 일 년에 한 번으로 그리고 다시 2년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지요. 이사 안 가도 되는 것만 해도 제겐 너무나 좋은 일이기도 했지요.


'국수를 만다'고 표현하잖아요? 저는 사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라요. 보통 삶아서 손으로 돌돌 말아서 국물에 담아내서 '만다'고 얘기하는 줄 알았지요. 근데 생각해 보니 '물에 밥 말아먹는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아마도 '국수를 만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잔치 국수라는 게 고명을 화려하게 올리지만 사실 육수에 국수가 기본이지요. 어떤 국숫집에 가면 고명 많이 넣지 않는데, 전 그게 좋아요. 발 말아먹듯이 국수도 말아먹는 느낌으로... 그래서 '잔치 국수'라는 이름은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제게는 뭔가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음식이거든요. 굳이 오늘 저녁  잔치 국수를 먹겠다는 말은 안 하렵니다. 이 음식은 그냥 상상만으로도 배가 넉넉해지는 그런 음식이니까요.


*잔치 국수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보려고 시도는 했는데요... ㅎㅎ 포기했습니다. 다만 그 수수함과 소박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노래 하나 골랐습니다.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by 조경옥-노래를 찾는 사람들): 3분 47초

작사/작곡: 김창남/문승현

1984년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의 네 번째 곡이며, 조경옥이 단독 보컬을 맡은 곡이다.

개인적으로 2집보다는 1집을 더 좋아한다. 많이 부른 건 2집의 노래들이지만, 듣는 건 아무래도 1집의 곡들의 더 좋은 것 같다. 특히 박미선과 조경옥이 부른 4곡이 좋은데, 곡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이 두 분의 목소리가 좋아서다.

특히 조경옥의 노랫소리는 지금도 좋아하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편하게 안기고 싶은 목소리다. 발표된 노래가 많이 없어서, 이 앨범 외에 '겨레의 노래 1'이라는 옴니버스 앨범에 실린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라는 곡도 참 많이 들었다. 이 곡은 송창식과 듀엣으로 불렀는데, 잘 울리는 건 둘째 치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남녀의 목소리라 좋아한다.

조경옥 씨는 2009년에 '잘 지내시나요'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찾기가 어렵다. ㅠㅠ

김광석도 참여한 앨범이니 어딘가에 그의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음악 그 자체나 아니면 가요사 측면에서 이런저런 말을 덧붙일 수도 있지만, 별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비평은 내 영역이 아닐뿐더러, 난 그저 노래를 좋아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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