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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21. 2018

희미하게 보이는 너의 모습은

Q2. 기억하는 (나의) 유년 시절?

유년이라고 보다는 소년?이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그 정도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그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한 것은 '길'입니다.


참 많이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의정부에서 처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집에 오는 길은 산 넘고 바다 건너는 수준이었습니다. 철길을 걷는 것은 물론 중간에 있었던 부대 철조망 사이로 탱크나 대포 같은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강 같은 개천을 건너야 했었죠. 지금 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닙니다. 지도상으로는 1km 남짓... 하지만 직접 걸어 보면 또 꽤 되는 거리더라고요.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시흥(현 금천구 시흥동)에서 광명을 걸어서 다녔던 것입니다. 전학이 바로바로 안되어서 한 학기를 그냥 걸어서 다녔어야 했는데 그 길을 지도에서 찾아서 그려 봤습니다. 

지도상으로는 대략 3km 정도 되네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길은 그대로네요. (당시에는 대부분 흙길이었지만..)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5학년의 걸음 걸이니까, 아마도 1시간이 좀 넘는 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솔직히 지금은 다시 그 길을 걸어볼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이제야 생각하게 되지만, 당시 어머니는 또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하지만 당시에는 저의 상황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 길만 해도 저 혼자만 걸은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늘 길 위에 있습니다. 길에서 함께 였고, 길에서 놀고, 길에서 자랐습니다. 매일 같은 것들 속에서 뭔가 다른 것을 찾는 법도 배웠을 것이고, 호기심도 함께 자랐을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운명이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경험들이 계속 나와 함께 자라서 지금의 나로 된 것일까요? 다른 건 몰라도 몸은 꽤나 튼튼하게 단련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병원 간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말이죠.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어린 나의 모습을 지켜본다면 어떨까... 아마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 나면서도, 입은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는 알지 못했던 주변의 수많은 위험에 오히려 지켜보는 지금의 내가 무서워할지도 모르겠고요. 무엇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무한으로 솟아날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이렇게 보니,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참 많이 고마워해야 할 것 같네요. 현재의 상황에 관계없이 지금의 나는 결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위해서 많은 것을 겪고 극복하며 살아준 오랜 시간 속의 희미한 꼬마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야겠습니다.    


Nothing's good enough album cover (U&Me Blue, 

세상 저편에 선 너 (by 유앤미블루): 5분 21초

작사/작곡: 방준석, 이승렬

1994년 발매된 유앤미블루(U&Me Blue)의 데뷔 앨범에 두 번째 곡. 온전히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당시에 국내 처음으로 시도된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소개되었던 것 같다.

유앤미블루(U&Me Blue)는 방준석과 이승렬 2인으로 구성된 밴드였으며, 둘 모두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고 했다. 현재 이승렬은 솔로 가수로 방준석은 영화음악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방준석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일은 예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박정현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공연에 기타와 보컬로 같이 무대에 선 적이 있다. 나는 엄청 흥분해서 봤는데, 잘 아는 사람도 없더라는... 그래도 그렇게라도 보컬과 기타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다만 그 편곡 자체는 프린스의 '퍼플 레인(Purple Rain)' 냄새가 너무 나긴 했었다. 암튼 결론은 방준석 짱!

 국내판 '저주받은 걸작' 순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반이다. '저주받은 걸작'이란 게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수준으로 남용되긴 하지만 이 앨범만큼은 철저하게 망했다는 측면에서, 밴드가 해체(2집까지 내긴 했지만)되었다는 면에서 그리고 앨범 자체는 지금도 꿀리지 않을 만큼,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저주받은 걸작에 근접해 있다.

발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앨범의 곡들이 처음 들었을 때 '아! 이거다!'라는 느낌은 들이 않는다. 심하게 낯선 느낌마저 드는데, 그게 외면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되는 그런 마력이 있다. 그렇게 자꾸 뒤돌아 보다 반하게 되는 그런 거? 그나마 '세상 저편에 선 너'가 가장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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