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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Nov 13. 2018

11월 그 저녁에 묻고 답하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처음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나는 [  ] 사랍입니다'라고 말을 만들려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떤 사람이라니...? 뭐 이딴 질문이 다 있어?'


'어떤'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요즘 어때?'라고 물을 때는 분명히 상태를 묻는 말일 것이다. 잘 지내, 그럭저럭.. 등과 같은 종류의 답을 하면 된다. 어떤 날은 또 어떤가? 여기서의 어떤은 상태일 리가 없다. 일종의 불특정 지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상태를 묻는 말이거나, 불특정 상태를 특정 상태로 바꿔보라는 시도일 수 있다. 자, 다시 집중해 보자. 난 어떤 사람인가....


기억나는 대로 오랜 과거부터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또 어떻게 살았는가... 생각이 많은 사람? 그런데 생각이란 늘 현재형일 뿐이다. 지난 시간 속에서 나는 생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나의 생각 속에 과거가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 시간 속에서도 나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애초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인데, 대답을 하지 못하니 점점 답답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데!!!!!!!!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았다. 내게는 특별한 경험들, 하지만 밖에서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대체로 그렇다.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 특별한 존재란 없다.


나는 그냥 살고 있다.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도 안다. 여전히 뭔가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저 그런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존재해도 혹은 존재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사람...

그래... 나의 대답을 찾았다.


'나는 한 사람입니다'


어떤날 II 앨범 커버 (어떤날, 1989)

11월 그 저녁에 (by 어떤날): 7분 29초

작사/작곡: 이병우

1989년에 발매된 어떤날 2집의 마지막 곡이다. 양희은이 '1991' 앨범에서 이 곡을 커버한 바 있다. 만약 어떤날의 보컬에 익숙하지 않다면 양희은이 부른 것을 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이 노래의 매력은 그런 거... 잘 못 부르는 듯 부르는 그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노래 진짜로 못하는 가령 나 같은 사람은 제대로 부르지도 못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지금도 여전히 어떤날의 곡 제목은 잘 모른다. 그냥 앨범 전체를 듣기만 해서 개별 곡에 대한 관심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나에게 어떤날은 1집과 2집만 존재한다.

다행스럽게도 어떤날에 대한 정보는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니 특별히 덧붙일 것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막혀 있는 점처럼... 그냥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원래부터 있던 존재일 뿐이다.

지금 11월이라고 굳이 '11월 그 저녁에'를 고른 것은 절대 아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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