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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ug 27. 2018

여행, 목적지 변경

rokezine feature story #1

1. 시작은 두 번째부터 

'여행은 갔던 곳을 또 가야 해. 두 번째부터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는 거지'

여행 관련 얘기가 나오면 늘 하는 말이다. 여전히 그렇다. 낯선 곳에 처음 가게 되면 아무래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가게 되면 익숙해지고, 처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곳에 대해 알게 된다. 


물론 낯선 곳을 한두 번 갔다고 그곳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하나둘씩 인연이 쌓이다 보면 비로소 '내가 아는 곳'이 된다. 그래서 늘 처음 가는 곳에서 떠나올 때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곤 한다.


한 때 마음먹었던 것이 내 아이가 자라서 여행을 하게 되면 그곳이 늘 두 번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다니기도 했지만, 내 역할은 이제 끝나 버렸다. 그래도 훗날 어딘가에서 '그래, 나 여기 와본 적 있어'라면서 자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2. 구경과 경험 사이

'거기 가면 뭐 볼 거 있어?'

대개는 이런 식이다. 볼거리, 먹을거리... 특이하거나, 색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여행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런 것은 어떨까? 초등학교 때 금천구 시흥동에 살았다. 내 기억에 '박미(아니면 방미)'라고 불리는 동네였다. 마을 앞으로 대로가 있었는데, 안양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고 친구들과 종종 안양까지 왔다 갔다 했었다. 서울과 안양의 경계선을 넘어가는데, 어린 마음에 묘하게 두군거렸던 기억이 난다. 뭔가 경계선을 넘는 것... 그런 게 바로 여행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커다란 집이 있어 집 안에서만 평생을 산다면 과연 '갇혀있다'라고 인식하게 될까? 아무도 집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면... 내가 사는 세계가 아무리 작거나 크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어떤 한계를 느끼데 되는 것은 '경계'를 만날 때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경계를 찾고 그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여행은 끊임없이 속박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에의 의지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디 가봤어?' 혹은 '그거 한번 꼭 봐야 하는데..'와 같은 구경을 위한 여행은 내 취향은 아니다.


3. 일상에 집중하는 것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일상의 무서움이었습니다.
예전에 우리 가족의 여행이 여행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라 했는데,
지금 보니 약간 잘못된 표현 같습니다.
사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일상.. 
그중에서도 책임이 있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끼니마다 밥을 하는 먹고, 매일 일을 하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얻는 기쁨. 그게 여행의 행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여행이 왜 좋니?' 하면, 
'숙제 안 해도 되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이,
실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정답'인 것이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에 갇혀 있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이것은 절대 진부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는 아주 정확한 표현입니다. 
(2010년 1월 8일)

예전에 썼던 글이다. 확실히 나는 여행의 반대말을 '일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상에 매력을 느끼고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여행과는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 한창 그러하다. 굳이 여행을 생각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많은 것을 찾고, 배우고, 즐기고 있다.


내게 있어 일상과 여행에서의 행동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일상으로의 여행' 이제는 굳이 어느 먼 곳을 꿈꿀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가 파리에서 했던 것이라곤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는 일들이었으니까...('일상으로 초대(신해철)' 가사를 따라 했다)  


4. 그래서 여행 좋아하세요?

많이 생각했다. 여행?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늘 뜻뜨미지근한 감정이지? 예전에도 그랬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전에는 어디 어디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도 많았는데, 이제는 크게 미련 없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을 걷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마찬가지다. 안 가도 그만.


나처럼 어디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여행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약간 의심스럽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는 늘 여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금은 목적지가 다른 것일 뿐이라고.

지금 내 여행의 목적지는 아마도 내 안의 깊은 어떤 곳이라고....  


'나의 연대기'를 정리하다 보면 늘 실제 사건보다는 자꾸만 어떤 것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서... 살짝 스타일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가끔씩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테마를 잡아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Santorini (by Yanni): 4분 34초

작곡: Yanni

1986년 발매된 야니(Yanni)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Keys to Imagination'에 4번째 곡으로 발표되었고, 후에 일곱 번째 앨범 'In celebration of Life(1991)'에도 첫 번째 곡으로 실린다. ('In celebration of life' 앨범은 초기 앨범의 곡들을 모아 발표한 컴필레이션으로 알고 있는데, 위키피디아에는 정규 스튜디오 앨범으로 분류되어 있다.)

야니는 그리스 출신의 음악가로 키보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어우러진 곡들을 발표하고, 세계적인 유적지(아크로폴리스, 피라미드 등등)에서의 공연으로 유명하다. 야니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틀기 좀 어려운 상황이라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런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뉴에이지 장르로 구분하는데, 스스로는 뉴에이지가 아니라고 부인한다고 한다. 공연을 보면 뉴에이지라고 하기에는 엔터테이닝 요소가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반젤리스의 맥을 잇는 크로스오버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거의 듣지 않지만..

예전에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길도 들어가는 배를 타고 이 음반을 들었는데, 배가 출발하면서 본격적인 항해로 가는 과정에 'Santorini'를 들었는데, 상황과 음악이 너무나 잘 맞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서서히 배가 항구를 떠나 방향을 잡고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바다로 나아가는 그 흐름과 음악이 너무 잘 맞는다.

보통 여행하면서 또는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편이 아닌데, 꾸역꾸역 엠디 플레이어(오래 전의 일이라..)까지 꺼낸 것을 생각하면 뭔가 미리 계획해 둔 것... 말하자면 애초에 이 음악을 듣고 배에서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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