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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n 05. 2020

살림의 맛

Up in my treehouse

보통 살림이라고 말은 하는데, 막상 그게 뭘까? 생각해 보면 막연하기 그지없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그런 일을 말하는 걸까? 왜 혼자 살 때는 살림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제야 살림한다고 스스로 생각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사전을 펼쳐(?) 보니 의외로 거의 100% 수긍할만한 해답이 있다. 


살림(명사):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호오~ 이런 (모호해서) 명쾌한 정의가 있나? 모처럼 맘에 쏙 드는 사전이라니... 이제야 혼자 살 때, 살림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정의는 그렇다 쳐도 나 스스로 살림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와 분석이 합쳐져 밥을 해 먹기로 한 이후, 또 그렇게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1년 전에 이사를 하고, 지금까지 1년 동안 차근차근 변화가 있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이제 4 식구라는 거대한(??) 집안의 살림을 담당하는 초보의 단편적인 감상이다.

말하자면 컵 덕후


-단 맛

살림의 가장 달콤한 맛은 청소다. 스스로에게도 의외인데, 싱크대나 욕실 배수구의 몇 년이나 묵었는지 모를 오래된 때를 제거하고 난 후의 기분은 말 그대로 달콤했다. 특히 에어컨의 경우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생각하며 올여름이 오기 전에 전문가를 불러서 청소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하지 뭐,라고 마음먹고는 분해해서 직접 청소를 했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청소 후의 나오는 바람은 살짝 단 맛이 나는 것도 같다. 


-매운맛

살림이 만만치 않다고 처음 느낀 것은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함을 느끼면서부터다. 아직은 밖에 나가는 일보다 앉아서 하는 일이 많은데,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해서 곰곰이 따져 보니 생각보다 살림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았다. 세끼도 아니고 한 끼 반 정도인데도,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빠져나가고 피로도 만만치 않게 쌓인다. 거기에 하느라고 하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에, 오늘 뭐 먹지? 하는 소소한 고민들까지... 생각보다 살림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쓴 맛

손에 물 묻히는 일은 좀 씁쓸하다. 원래 설거지하는 일은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게 자꾸 반복되다 보니 손의 느낌이 축축해졌는데, 이건 좀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요즘에는 설거지가 싫어진다. 이게 단계적으로 변하는데,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점차 손에 물이 묻는 순간의 기분이 축축해지더니, 이제는 평소에도 손의 느낌이 젖어 있는 기분이 든다.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 쓴 맛도 삶의 한 부분이니까.


-짠맛

(내 기준) 살림을 시작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가계'다. 가계부를 정리하기 시작한 지 5년째 되어 가는데, 분명 혼자일 때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이 효율적이다. 원래는 2인 일 때도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것이 더 경제적(?) 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들 녀석이 많이 먹는 편이고, 또 잔반을 남기지 않는 편이라 바꿨다. 반려견들은 먹는 것보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데, 그래도 아직까지 아프지 않아서... 큰 불상사는 아직까지는 없다.


살림에서 가계는 늘 짠내 나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뭐 돈이 무한대로 많다면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실은 마찬가지라고 믿지만), 나름 이 짠내가 살아내고 있음을 증명하는 부분도 있어 괜찮다. 적당한 짠맛이 활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 같다.


-신 맛

같이 산다는 것은 사실 서로 인내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좋은 것들은 금방 익숙해지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 생각보다 아들 녀석의 잔소리와 결벽은 심하고, (반려견은) 두 마리 되더니 안 그랬던 녀석 마저도 스토커처럼 쫓아다닌다. 이런 것들에 대해 '교정'해야 한다는 일은 내 기준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아들 녀석의 잔소리도 그의 기준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성격, 습관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서로 인내하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 감정 상해 씩씩거리는 기운이 방 안 가득 퍼진다. 사람이나 개나 할 것 없이 감정이 있고, 표정이 있다. 시큼시큼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이니까.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은 그런 맛이니까... 


- 감칠맛(부록)

네 번째(어쩌다 보니 차례차례 이 집에 온 순서가 생겨서..) 식구는 '쿠키'다. 이 녀석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데, 우선 반려견의 입장에서 '밍키'와 매우 다르다. (낯선) 사람을 좋아하고, 잘 안긴다. 안기면 힘을 빼고 매우 편안해하기도 하고, 잘 짖지 않지만, 필요한 경우는 눈을 마주치며 그로울링으로 의사 표현한다. 활발하고 적극적인데, 다만 밍키에게는 매우 불친절하다. 우리 집안(?)에서는 좀 특이한 존재인데, 스스로가 귀염 움을 받는 것을 잘 알고 또 적극적으로 귀염을 떠는 편이다. 다만 식사 시간이 좀 애매해서 새벽 4시~5시만 되면 나를 깨우는데, 이 시간은 잠든 지 1시간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귀찮은데, 어쩔 수 없다. 또 이 문제 때문에 내 생활 패턴도 많이 깨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친구 하나 있는 것이 쪼끔은 활력을 주기도 한다. (밍키도 이 녀석의 영향을 받아서 많이 달라졌는데, 그게 뭐 좋은 방향은 아니라서.... ㅠㅠ)  

내 이름은 '쿠키'

Sails album cover(Chet Atkins, 1987)

Up in my treehouse (by Chet Atkins): 3분 52초

Writer: Billy Joe Walker

1987년 발매. Chet Atkins의 54번째(!!) 앨범이다.

1세대 기타 연주자로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기버지' 중의 한 분... 이후에 마크 노플러와 같이 협연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 이 앨범에서도 같이 참여했다. 마크 노플러 외에도 얼 클루 같은 기타리스트들이 참여했다.

이 정보만 보면 첨 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음악을 들어 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봤을 곡들로 가득한데 내 기억으로는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그널 혹은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였다.

생활 브금으로 좋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CD 구입 초창기에 샀던 앨범인데 아마 첫 구입한 CD 10장 안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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