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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Oct 04.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21

배우는 것과 알게 되는 것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너무 이른가요?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짐작해 보건대, 정신 차리고 나면 12월이 되어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일을 안 할 때는 모르겠는데, 일을 할 때면 늘 10월~11월은 빡빡했습니다. 그래서 추석 연휴는 내가 즐길 수 있는 한 해의 마지막 휴식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딱 지금 드는 묘한 감정....


딱히 정리하고 따지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살아가면서 그런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받았을 때, 예전에는 부들부들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면 거의 예상대로 그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번복됩니다. 이런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예전 같으면 그래도 하겠다고 당장 밤을 새워 준비하고는 다음날 받은 취소 소식에 허탈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런 예상의 적중률이 제법 높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안 되는 건 어차피 안 되는 것. 그런 것에 굳이 힘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되거든요. 그러다 잘리면? 안 하면 되는 거죠. 내 입장에서 미안할 일도 없고, 다음을 기약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건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흘러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는 그런 것들 이겠지요.

[세월]은 당분간 접어 두었습니다. 뭐랄까... 문장 하나하나가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어서... 아니 에르노의 작품의 장점 중의 하나가 분량이었는데, 분량도 많다 보니... 에너지가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책은 펼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회와 학교는 뭔가 쌍둥이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학교의 기원을 교회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 만큼 틀린 기분은 아닐 텐데, 이 기분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그런 책들을 읽으며 배워서 생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배운 것이 바로 아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 변화의 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저는 특이하게 학교에 대한 감정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확인해 보니,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많이 나왔더군요. 제가 가진 마지막이 [호재]인데, 그 뒤로도 6권이나 발간이 되었네요. 근데 최근의 작품 선정에는 약간 불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고민 중입니다. 최근에는 구입해야 할 중고서적 리스트를 작성 중입니다.


[보편적 정신]은 가만히 책장을 보다가 '이건 무슨 내용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보았습니다.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갔는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 이해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알게 된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요, 이래서 옛날에 '저주받은 걸작'이나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처음 읽으면 이게 뭔 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최근에 읽은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는 책은 구입할 때부터 굉장히 낯이 익었는데, 알고 보니 정이현 작가의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와 표지가 비슷합니다. 같은 작가(표지 디자인)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림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좋아하는 작품집입니다. 담백한 잔인함? 일상적인데, 그게 살짝 기울어진 그런 느낌들을 보여 주어서, 즐길 수 있을 만한 고통들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펼쳐 보곤 합니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얘기 많이 했으니까... 


작년에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그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을 위한 예술 교육을 기획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특별한 행위가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게 그게 글쓰기, 그림 그리기, 말하기, 노래하기였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들... 


그런 문장을 만나니 반가워서 뽑아 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표지 때문에 먼저 언급했었던 [내 안의 차별주의자]입니다. 한 참을 읽다가 무득 저자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진이 등장하더군요. 매력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은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룬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기획자의 손을 거치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나쁘든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배움이란 그 과정에 존재하는 한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 다시 말하면 같은 위치의 앎위에 서 있는 경우,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아는 것 외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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