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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06. 2015

평생의 기다림과 고독

When the blind man rings that bell

'초속 5센티미터'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신카이 마코토라고 대표작은 '별의 목소리(Voice of a distance star)'다. 이 사람은 전 작업(음악 빼고)을 혼자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초속 5 센티미터'는 2007년에 발표된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장면 장면이 아름다워서 아무 장면 캡처 하면 그게 월페이퍼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그림이 예쁘다.


오래간만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그리고 갑자기 왜 다시 보고 싶어 졌는지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애초에 영화는 서로 다른 단편 에피소드였는데, 장편으로 엮으면서 살짝 이어지도록  편집했다고 한다. 때문에 온전히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혼자 다 해 먹는 작업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감정은 하나로 이어진다고 얘기해도 무방할 듯 싶다.


어린 시절의 연인을 기다리며 평생은 혼자 갇혀 살아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최근에 다시 출간되어 나를 흥분하게 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2부 '50년간의 고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시간을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의 고독이랄까... 영화 내내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제목은 초속 5센티미터도 그렇고 여자친구를 찾아 가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시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2화에서는 시속 5킬로 미터라는 언급도 나온다. 특히 우주 비행사라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여행자의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도 있다.


혼자 자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도  그중 하나다. 늘 잠에서 깨면 집안에는 나 혼자 뿐이었고, 무엇을 하든 혼자 찾아서 해야 했다. 그걸 못 견디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외로움은 견디기 힘든 것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림과 고독은 비록 시간 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터널처럼 하나의 방향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빠르든 느리든 천천히 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끝내 터널의 끝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바깥 세계에서 보면 사람은 모두 시간 속에 갇힌 존재들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쌓이다 보니,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일을 하는 데도 그랬고, 다른 일상에서도 비교적 그랬다. 그렇게 못났던 시절도 지나 버리고, 이제 다시 혼자의 길을 가지만, 조금은 가슴을 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기다림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음악이 Nick Jaina의 'When the blind man rings that bell'이다. 올해 알게 된 곡이지만, 한 번에 좋아하게 된 곡이다. 이 곡 역시 '기다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속 5센티미터의 마지막은 주제곡과 함께 주요 장면을 편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는데,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진 않아서... 


*When the blind man rings that bell (by Nick Jaina with Kaylee Cole): 2분 14초

*2011년 발매

*Nick Jania의 'The Beanstalk that have brought us here are gone' 앨범의 첫 번째 곡

*작사/작곡: Nick Jaina

*Nick Jaina는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 출신의 뮤지션이자 작가이다.  nickjaina.com을 운영하는데, 지금까지 5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발레 음악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대중  음악인이라기보다는 예술가 쪽에 가까운 뮤지션으로 보인다. 본 앨범의 경우도 2년 간이나 그의 집 지하실에서 녹음되었다고 한다. 이 앨범은 10명의 각기 다른 여가수들이 불렀다.

*클래시컬 팝이라고 해야 하나? 보통 장르 구분을 할 때, 이런 류의 음악을 대충 포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반대하는 편이다. 이 앨범의 곡들은 전체적인 문법은 오히려 팝의 문법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악기 편성 역시 장르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곡마다 필요한 선택을 하는 것 같다. 인디일 뿐, 보통의 팝과 다를 건 없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인디'를 장르로 구분하는 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결론은 이 앨범 좋다. 특히 새벽 동트는 시간에 들으면 멀리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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