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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Dec 12. 2015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열려 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성

아주 오래전에 개인 홈페이지를 열었던 적이 있다. 지금처럼 광속을 자랑하는 시절이 아니어서 글로만 페이지를 만들어 올렸다. 소설 쓰는 연습도 했고, 이전에 써두었던 일기나, 독후감 같은 것들과 내 생각을 써서 올렸다. 블로그를 맨 땅에 헤딩하면서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웹 서핑을 하게 되었고, 개인 홈페이지들이나 외국의 사이트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던 사이트가 '컨트롤 D'라고 어떤 디자이너(추정)의 개인 홈페이지였는데, 굉장히 깔끔하고, 좋은 사이트를 많이 연결해 두었고, 부수적으로 모던락을 소개(모리세이의 팬으로 보이는..)하고 음원을 공유하기도 해서 좋아하는 페이지였다.


나중에 'PC사랑'인가... 하는 잡지에 그 홈페이지가  소개되었는데, 맙소사! 개인 홈페이지 섹션에 내 홈페이지가 추천으로 걸려 있었다. 소개하는 글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투명한 자아가 부서질 듯 보여서 말 걸기도 조심스럽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칭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아서 무척 부끄러웠다. 애초에 내 홈페이지 역시 감정의 부산물이었다. 헤어지고 난 후에 허전함을 메우려 갑자기 몰두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계속 그래 왔던 것 같다. 애당초 싹싹하고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접근하기 어려워한다. 아마도 난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 들어올 자리가 없는 그런 가시나무 숲 같은 존재일 것이다.


대부분의 헤어짐도  되돌아보면 그런 이유였다. 친절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리다는 건 한편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고,  우유부단하거나, 스스로 강한 보호 본능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결국에는 내 안에 세워진 견고한 벽에 이르게 되고, 그 벽과 맞닥드리는 순간 막막하거나 때론 두려운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그게 내가 가진 한계다.  지켜보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여전히 말을 하고, 글을 쓰더라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과 '내가 어쩔 수 없는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참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은 빼고라도 자꾸 열어두고자 한다. 아직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성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더 강한 사람이 그 견고함을 무너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도 점점 약해질 테니까...


가시나무 (by 시인과 촌장): 3분 56초

1988년 발매된 3집의 첫 번째 곡

작사/작곡: 하덕규

누군가와의 첫 데이트 때, 신촌에서 이 앨범을 사고는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달려간 기억이 난다. 첫 만남부터 소중하게 다뤘던 LP이고, 지금도 갖고 있다.

싱글로 인기를 얻었던 곡은 '가시나무'지만, '때',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좋은 나라', '푸른 애벌레의 꿈', '숲'으로 이어지는 B면은 언제나 최고다.

내가 살짝 적대적 무신론자여서 속지에 적힌 "마지막 녹음 직전에 '가시나무'와 '나무'를 만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 다급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판에 대한 칭찬을 그에게 돌린다."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 고민 많이 했다. 내가 칭찬을 하면 그를 찬양하는 꼴이 되니까.... 

이전까지는 '시인과 촌장'이 하덕규와 함춘호로 구성된 2인조였지만, 이 앨범에 함춘호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함춘호의 기타 연주를 좋아하는데.... ㅠㅠ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면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제법 되지만, 그래도 좋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만든 곡이든 아니든 나에게는 나의 의미가 있으니까...  그때는 대부분 연애와 관련된 것이었다. 신앙도 연애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 의심한 것도 이 앨범을  통해서였다.

뒤늦게 추가... 이 곡도 꽤 많이 커버(우리식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조성모의 커버가 원곡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자우림이 '나는 가수다'에서 커버한 버전은 무척 좋아하는데, 사실 원곡이 없고 자우림이 오리지널로 불렀다고 생각해 보면 약간 의문이긴 하다. 원곡이 미니멀(다른 표현을 찾아 보다가 포기...)한 것에 대한 대척점에 있기에 감정이 살아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음악 자체는 너무 과하다. 애초에 자우림이 오리지널로 불렀다면 그렇게 편곡하지도 않을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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