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어울리는 노래
지난 주말에 문득 'across the universe' 노래가 생각났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작품에서 이 곡을 언급했었다. 시작 부분에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그런데 난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새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데자뷔'처럼 무언가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흐릿하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하늘을 나는 새와 새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풍경. 늘 똑같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영상이다.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노래도 처음인데 익숙한 느낌이다.
문득문득 그럴 때가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낯설지 않다는 기분. 너무 좋아서 방방 뛰면서도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쁠 때도 그렇다. 아프고 괴로운데,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낯설지 않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 삶은 반복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지금도 숙제다.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가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런 의문이 든다. 사는 게 이렇게 재미(혹은 의미) 없는데, 왜 살아야 하지? 잘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흠.. 그건 일부는 맞는 말 같다. 정말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제로섬이다. 좋을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방향만 바꾸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내게 그건 같은 질문이다.
여전히 목표는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최소한 내 삶의 목표가 없었던 적은 없다. 그게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 했던 동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선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씁쓸하게도 내가 배운 잘 사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정도 행할 수 있는 악마 같은 재능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안된다. 아무리 머리 속에 계산이 서도 그게 안된다.
결국 내린 결론은 이렇다. 죽으면 죽었지, 못되게는 못 산다고. 나 살겠다고 나쁜 짓은 못하겠다고. 나쁜 짓이란 별거 아니다. 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에게든 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못하겠단 것이다. 그렇기에 죽는 건 가장 못 되고 나쁜 짓이다. 다시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면 열심히 산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니까.
이것도... 낯설지가 않다. 아마 내일 아침도 익숙할 것 같다.
일주일 동안이나 생각했다. 왜 이 곡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때 난 '마지막'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는 'Let it be' 앨범에 실리기 전에 Word Wildlife라는 재단에서 기획한 자선 앨범을 통해 먼저 발표가 되었다. 그 곡에 새소리가 있다.)
*Across the universe (by Fiona Apple): 5분 6초
*1998년 개봉된 영화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에 삽입된 곡으로 사운트랙의 첫 번째 곡. 영화는 기억이 났는데, 어느 장면에 삽입된 곡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사/작곡: Lennon-McCartney (처음으로 오리지널이 아닌 커버곡을 메인으로 잡았다.)
*비틀스의 모든 곡은 레논-매카트니 작사/작곡으로 표기되지만, 각자 만든 곡은 구분되는 데, 이 곡은 존 레넌이 만든 곡이다.
*원곡은 비틀스(The beatles)의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1970년 발매)에 세 번째 곡으로 실려 있으나, 그보다 먼저 World Wildlife 재단의 후원 앨범에 실려 1969년에 발매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1968년에 녹음을 한 바 있으나, 발매는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을 보면 비틀스의 곡들이 테이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곡에 대해서 존 레넌은 마음에 드는 버전은 한 개도 없다고 얘기한 바 있다.
*대략 8곡의 원곡 포함한 커버 곡을 들어 봤는데, 나는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의 버전이 가장 느낌이 좋았다. 이 곡은 가사나 멜로디 혹은 특정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오나 애플의 곡이 나의 송북 리스트에는 오르기 어려울 것 같지만, 그녀의 음악은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