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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an 22. 2016

I sense autumn coming on

가을의 향, 가을의 색, 가을의 맛 - 아트 쉐프에게 바치는 노래

오래간만에 류니끄에 들렀다. 작년 여름 이후로 한동안 가지 못했고, 그동안 메뉴도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오랜 지인과 따지자면 처음으로 갖는 시간이라 여러 가지로 고심했는데, 류니끄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았다. 미술관에 가는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작년  봄쯤에 류니끄에 테이스팅 메뉴를 주제로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었다. 많이 경험하기도 했고, 쉐프의 영감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선곡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선곡 작업을 해보니 쉽지는 않았다. 하나하나의 메뉴가 감성이  풍부한 데다가, 전체적인 코스를 통해 완성되는 이미지는 또 달라서 내가 음악을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선곡만으로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딱 하나 '메추라기 "추억"'에 대해서만은 페이스북을 통해 한 곡을 전달하긴 했다. 띠에리 랑 트리오(Thierry Lang Trio)의 'A star to my father'라는 곡인데, 그건 내가 그 요리의 깊은 바닥에 깔려 있는 감성을 알기 때문에 고를 수 있었다. 다만 숨겨진 감성이 아닌 요리 그 자체로 볼 때는 많이 주관적인 선택이었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오늘 테이스팅 메뉴는 변화가 많았다. 첫 번째 Amuse부터 확 달라진 느낌이었고, 색과 향과 맛,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이전의 메뉴들을 좋아했고, 또 그 인상이 깊었던 만큼 오늘의 메뉴들은 낯선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코스 전체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그것은 가을이었다. 색의 변화도 짙어졌다가 하얗게 바래지는 인상이었고, 맛도 깔깔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슬쩍 머물다 가는 향도 이제 뒤돌아 가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다시는 만나지 못함을 예감하는 기분을 남겨 준다. 쓸쓸하기도 하고, 이제는 마음 편하게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은 여유와 편안함... 그런 느낌이었다. 맛은 하나하나가 희미하고 아련한 그런 느낌....


그런 노래가 있다. 스트롭스(Strawbs)의 'Autumn'이다. 이 곡을 다시 들어 보니, 더욱 류니끄의 메뉴와 잘 어울린다. 무겁고, 조금은 건조하게  휘몰아치는 1부를 지나, 다소 단출하게 전개되는 가을이 오는 풍경. 'The sun sinking red and deep, the fires burning in the fields as late summer falls asleep' 두 번째 파트에서 그린 가을이 오는 풍경이다. 곡은 멈추지 않고 바로 겨울로 이어진다. 류니끄의 디저트 메뉴도 쵸코 "겨울 숲(Choco Winter Forrest)"다. 겨울은 춥다. 하지만 겨울 속에서 생명은 따뜻하게 살아 있다.

Soft falling snow
Warm candle glow
Flushed Faces show
The pleasures when we meet.
Hold on to me, I'll hold on to you
The winter long I will always be with you

만남은 3시간 동안 쉴 틈도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전혀 시간이 가는 것도 피곤함도 느낄 틈도 없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길게, 약간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었어도,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시간의 공백이란 것이 없었다.


겨울이라서 그럴 것이다. 시간도 멈춘 듯 보이는 것이 겨울이지만, 겨울이라는 외투 안에는 늘 따뜻한 피가, 생명의 기운이 흐르고 있으니까. 가을에 스쳐 지나간 것들이 곧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류니끄의 아티스트인 쉐프 류태환과 그의 새로운 작품에 내 감사와 우정, 사랑을 담아 이 곡을 보낸다.

류니끄(Ryunique)의 2016년 테이스팅 메뉴
류니끄(Ryunique)의 2014~2015년 테이스팅 메뉴

'Hero and Heroine(1975)' Strawbs

Autumn (by Strawbs): 8분 27초

1974년 발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포크록 밴드 스트롭스(Strawbs)의 'Hero and herione'앨범의 첫 번째 트랙. 'Heroine's theme', 'Deep summer's sleep', 'The winter long'의 3개 파트로 구성. 이 중에서 'The winter long'만 싱글로  발매된 바 있고,  'Heroine's theme'도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바 있다.

작사/작곡: John Hawken(Part 1), Dave Cousins(Part 2, 3)

곡의 제목은 Autumn인데, 각각의 제목은 여름에서 겨울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연주곡인데, 두 번째 파트와 세 번째 곡의 가사를 보면 전체 제목에 왜 Autumn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고전적인 느낌이지만, 가사는 제법 괜찮다.

스트롭스(Strawbs)는 흔히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분류하는데, 사실 전반적인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은 포크 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음반 수집 초창기부터 보유하고 있는 앨범인데, 지금도 어느 날 갑자기 'Autumn'이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지난여름에는 립핑해 놓은 음원을 못 찾아서... 며칠 찾아 헤맸었던 기억이 난다. LP로 있지만, 당시에는 플레이어가 없어서 그냥 표지만 보면서 소리를 상상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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