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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an 18. 2016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봐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한다.

너무 많은 바람이 불었나 봐
엉겅퀴 꽃씨가 저리도 날리니
우린 너무 숨차게 살아왔어
친구, 다시 꿈을 꿔야 할까 봐

모두 억척스럽게도 살아왔어
솜처럼 지친 모습들
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 드높으니
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봐
('푸른 돛', 하덕규)


많이  돌아오긴 했다. 착각 속에 빠져서, 오만 속에 빠져서...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 데나 내쳐 놓고서는 '무엇이 문제일까?'만 생각했다. 너무 오랫동안 난 어리석었다.


매일매일 누구도 원망하지 말자고 다짐할 만큼 내 속은 알 수 없는 원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애초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를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부질없는 몸부림만 쳤을 뿐이다.


어느 날 깨어보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한 번에 싹 빠져 나갔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을 깨닫는데도... 그것을 빼내는 데도...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고, 씻어내야 할지, 하나하나 떼어내야 할지도 판단하기 어렵게 얽혀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젠 좀 속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강인한 나를 원했지만, 나는 그리 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그건 이미 내가 아니라는 걸... 내게 주어진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다시 시작하는 일은 힘들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다시 출발선에 서기까지다. 이제 출발선에 섰으면, 다시 달리면 된다. 빨리 달리지 말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넘어지지 않도록 하면 된다. 어차피 끝은 없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듣는다. 친구, 다시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봐.


푸른 돛 앨범 커버 (시인과 촌장 2집, 1986)

푸른 돛 (by 시인과 촌장): 2분 7초

1986년 7월 15일 발매

작사/작곡: 하덕규

내가 아는 '시인과 촌장'은 이것이 첫 앨범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니 지금도) 버릇처럼 이 앨범을 1집으로 지칭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시인과 촌장'이 있었고, 1981년에 이미 한 장의 앨범을 발매한 바가 있다. 그 앨범을 구하지 못해 동동 거리 고는 있지만...

하지만 대체로 '시인과 촌장'은 하덕규의 원 맨 밴드라고 많이 얘기된다. (나는 소심하게 반대 하지만...)

'가시나무'가 있는  이다음 앨범의 임팩트가 크긴 하지만, 이 앨범은 은근하게 중독될  수밖에 없다. 깨끗한 맨 얼굴 같은 느낌으로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순수함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곡들도 비슷해서 첫 느낌보다 알면 알아갈수록 그 아름다움이 짙어진다. 테이프 하나에 '비둘기 안녕' 한 곡만을 녹음하여 주야장천 들었던 적도 있고, '진달래'의 처연함에 푹 빠진 적도 있다. '얼음 무지개'는 '어린 왕자'와 같은 수준으로  사랑했다. '사랑일기'가 오히려 가벼운 소품처럼 여겨질 정도로... 전 곡이 자기만의 색깔과 이야기와 감정을 담고 살아 움직인다. 걸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하늘에서 갑자기 툭 떨어진 선물 같은... 그런 앨범이다. 

앨범 쟈켓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의 질감이 너무 좋아서 흉내 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그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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