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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n 24. 2016

Have you ever seen the rain?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벽 거리를 달려간 곳은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다.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은 입은 옷과 현금 조금밖에 없었다. 어디를 가겠다거나,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눈에 뜨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정했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었었나... 공주 가는 표를 끊고 바로 차를 탔다. 잠도 오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탁해 보였다. 공주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아홉 시도 되지 않았다. 아직은 쌀쌀한 3월 초, 폐허가 된 터미널 옆의 큰 건물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고등학교 때인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공주를 이런 식으로 밟게 되었다.


걸었다. 사실 걷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휴대폰이 보급된 이래 휴대폰 없이 어디를 가 본 적이 없었고, 돈 한 푼 없이 신용카드만 가지고 가지고 미국에 간 적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오직 내 몸에만 의지해서 걷고 또 걸었다.


공주를 한 바퀴 돌고 다시 터미널로 왔는데, 아직 오전이었다. 다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버스는 서대전행이었는데, 대전 터미널에 도착했더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중심가에서 먼 곳인 것은 알겠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처음엔 당연히 조금 걸으면 대전역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길을 걷고 또 걸어도 내가 아는 지명은 이정표로도 보이질 않았다. 굳이 정해 놓은 것도 없었기에 동네 골목골목을 걸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점집이 많은 동네였다.


배가 고프다거나, 피곤하다거나 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날은 맑았지만, 내게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처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서, 끝내 택시를 잡았다. 차를 타고 보니 대전역은 그다지 먼 곳에 있지도 않았다.  또다시 걸을까 생각하다가 그럴 거면 바닷길을 걷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끝이 있을 것 같은 길...


빈 가방만 하나 사고는 부산행 기차를 탔다. 대전에서 서울이 아닌 부산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부산은 그나마 눈에 익은 곳이 많아서 그래도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장소들을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눈으로 꾹꾹 찍어 보고 다녔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결국 가장 많이 가보았던 해운대로 갔다.


긴 하루는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해운대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가장 낡아 보이는 모텔에 들어갔다. 날이 저무는 것처럼 내 몸도 지쳐 있었고, 그냥 그대로 잠들었다. 지금도 그 잠을 기억하는데, 말도 안 되게 달콤한 잠이었다. 그렇게 편한 자리에서 그렇게 깊게 잤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슬프게도 행복했다. 이런 기분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었구나.... 처음 세상에 깨어난 것처럼 어제의 긴 시간과 차가운 태양과 퍼붓던 비는 사라져 버렸다.


Pendulum, CCR (1970)

Have you ever seen the rain? (by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하 'CCR'): 2분 39초

작사/작곡: John Fogerty

1971년 1월 발매 (싱글)

1970년 발매된  CCR의 6번째 정규 앨범에 4번째 곡으로 발표되었고, 1971년에 싱글로 발매가 되었다. 싱글 B면은 'Hey tonight' (이 곡도 좋다.)

곡의 가사에 대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존 포거티(John Fogerty) 본인은 밴드 내부 상황에 대해서 위기감을 상기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잘 나갈 때, 조심하자.. 정도? Have you ever seen the rain, coming down on a sunny day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걸 본 적이 있냐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만약에 여기서의 rain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표현으로) 폭탄 세례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잔인할 것 같다. ㅠ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CCR은 미국 냄새 물씬 나는 밴드다. Roots Rock이라는 장르가 애매하긴 한데, 그냥 록의 본질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게 과연 장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장르로서의 의미보다는 단순함을 기반으로 한 좋은 곡이 많다는 점이 더 좋다. 확실히 미국 냄새 물씬 난다. (그런데 미국 냄새가 어떤 건지는 잘 모른다. 솔직히) 발라드에 물릴 때, 아무 앨범이나 한 장 틀어 두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도 가끔씩 돌려 보는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엔딩 곡이다. 곡도 좋아하고, 드라마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조합이었다. 콜드 케이스의 경우는 어떨 때는 엔딩곡 부분만 보기도 한다. 보는 건지, 듣는 건지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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