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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l 07. 2016

어느 맑게 개인 날 (Un Bel Di Vedremo)

믿음의 배신

내가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간 곳이 나가사키다. 사세보의 하우스 텐보스에서 촬영한 후에 나가사키 시내로 이동하여 간 곳이 나비부인의 무대가 된 그로바엔(Glover Garden)이다. 나가사키 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인데, 거기에 나비부인의 동상이 있다. 미우라 타마키(Miura Tamaki)라는 일본 출신의 오페라 가수를 모델로 만든 것인데... 당시에 이런 자세한 정보를 알진 못했고, 그냥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망부석 설화 정도로 생각했다. (사실 오페라라고 듣긴 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라..)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가 '어떤 개인 날(Un Bel Di-약간 번역상의 차이는 있다)'인데, 2막(1장)의 첫 번째 장면에서 등장하는 곡이다. 하녀인 스즈키가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부르는 노래다. 곡의 가사는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녀의 믿음은 현실이 된다. '그'는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가 믿어왔던 그대로는 아니다. 대부분의 망부석 설화가 그렇다. 스스로 믿음을 깨지 않지만, 결국은 그대로 돌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게 믿음의 대가다.


두 번째로 만난 나비부인은 영화에서다. 부산 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리는 때에 혼자 부산을 갔다. 몇몇 상영관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봤지만 가장 인상이 남았던 것은 요트장에 만든 야외극장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번 갔었다.) 그곳에서 '메모리즈'를 보게 되었는데, 3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그녀의 추억(Magnetic Rose)'-가 오페라 가수의 애정과 집착을 다룬 스토리인데, 그때 나오는 음악이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이 곡 말고 다른 곡도 나온다고 하는데..)'이다.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이 곡은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그것을 밤하늘을 배경 삼아 야외에서 보았으니, 내게 던져지는 느낌은 몇 배나 더 큰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극의 주인공보다는 능동적이다. 기다리기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그 믿음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허망하고 부질없다.


보통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긍정 심리학이나 종교에서 믿음은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믿음과 상관없다(라고 믿어야 하나?). 누구나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지만, 스스로 믿는다고 그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믿음과 믿음이 부딪히면 싸움이 일어날 뿐이다. 믿음이란 우리가 움직이는 동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믿음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건 큰 오류다. 믿음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러면 최소한 믿음에 배신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맑게 개인 날
저 푸른 바다위에 떠 오르는
한 줄기의 연기 바라보게 될 거야.
하얀 빛깔의 배가 항구에 닿고서
예포를 울릴 때
보라!
그이가 오잖아.
그러나 난
그곳에 가지 않아
난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그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이와 만날 때까지
복잡한 시가지를 한참 떠나
한 남자 오는 것을
멀치감치 바라보리라.
그가 누군지?
산 언덕 위에 오면
무어라 말할까?
멀리서 버터플라이 하고
부르겠지.  난 대답하지 않고
숨어 버릴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극진한 기쁨 때문에 내가 죽을 것 같애.
한참 동안을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 어린 아내며
오렌지 꽃이라고 늘 부르던
그 이름을 부르리라
이렇게 되는 날이 꼭 올거야.
그이의 믿음을 간직하며
나 그이가 돌아오길 믿고 있어.

Un bel di (어떤 개인 날): 오페라 '나비부인(Madamm Butterfly)중 2막(1장에 등장하는 초초-나비부인의 아리아)

대본(liberto): Luigi Illica, Giuseppe Giacosa

작곡(Compose):Giacomo Puccini

나비부인은 라 보엠, 토스카와 함께 푸치니(Puccini)의 3대 오페라 중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1898년에 발표된 John Luther Long의 단편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소설을 각색하여 1900년 뉴욕에서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 졌고, 후에 런던 공연 시에 푸치니가 이를 보고 오페라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1904년에 오리지널 버전이 초연되었으나, 이후 5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1907년에 최종 버전이 만들어 졌고, 이를 '스탠다드 버전'이라고 부르며 현재는 이 스탠다드 버전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가끔 오리지널 버전이 공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많은 음반이 있지만, 1974년에 데카(Decca)에서 발매된 버전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비부인 역에 Mirella Freni, 핑커톤 역에 Luciano Pavarotti, 지휘는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연주는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Vienna State Opera Chorus가 했다.

혹자는 이 작품의 경우 공연보다는 음반으로 듣는 것이 낫다고 하기도 하는데, 스토리상 주인공이 15살(2막에서는 3년이 흘러서 18살) 일본 여자아이라서 약간 괴리감이 든다고... 무슨 얘긴지 이해는 간다.

이 곡만 놓고 보면 그래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것이 인기가 많다. 지난 일주일 간 무수히 많은 버전을 들어 봤는데,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마리아 칼라스에게 손을 들어 주고 싶다.

귀에 착 감기는 곡이라기 보다는 압도하는 느낌이다. 한 마디로 곡이 세다. 가사로만 보면 언젠가 내 남편이 돌아올거야 라는 절절한 기다림의 노래이지만, 상황적으로 보면 포기하라는 몸종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스스로의 믿음을 강화한다기 보다는 다름 사람에게 자기 믿음을 강요하는 상황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메모리즈에선 오케스트라 반주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 곡의 경우는 특별히 무반주 곡으로 듣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다.

평소에 오페라를 자주 듣지는 않는다. 일단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집중해서 듣기가 어렵고, 한 곡을 듣더라도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아서 왠만한 시간적인 여유와 집요함을 갖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히 제한적인 작품들만 그나마 아주 가끔 듣는 편인데, 실제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카르멘', '아이다', '투란도트' 정도다. 그것도 극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음악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많은 오페라의 대본을 보며 '이거 완전 막장 드라마인데?'라고 생각해서 내용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야 종합 예술로 클래식으로 대접 받지만, 예전으로 돌아가 본다면 오페라도 대중 예술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막장 소리 듣는 드라마들도 백년 후에는 아마도 클래식으로 대접받게 되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오페라를 건드리니... 할 얘기는 끝없이 나오는 것 같은데... 여기서 그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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