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와 지금의 나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새로운 세상은 과연 디스토피아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사실 처음 읽어보는 거나 마찬가지다. 중학교 때 읽었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그때 무엇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며, 지금 기억나는 것도 없다.
'멋진 신세계'는 읽는 내내 (적어도 내게는) 전율과 공포를 던져 주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특히나 회의와 절망감을 주었던)을 확인하면서 소름이 일었고, 그저 가정이었으면 좋았을 생각들이 진짜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3월 이후에 한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은 사실 피로감이었다. 물길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모래성을 붙잡고 버티다 나 자신까지 무너져 버렸다. 때문에 '뭐하러 그리 살았을까?'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다시 따져 보았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그저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된다면 정해진 시간에 아무 일이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공'이 무엇인지, 왜 성공을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이면 편안한 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으면 좋겠고, 제시간에 잠이나 푹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밖(나 자신을 기준으로)은 더 했다. 포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예인들 이야기일 뿐이고, 넘쳐나는 이야기들은 거의 전부 남자와 여자의 짝짓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보이는 세상은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무언가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쾌락을 좇을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제시하는 삶의 길이란 것도 결국은 그렇다.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어서 예쁘고 능력 있는 사람 만나서 가족을 이루고 편안하게 사는 것. 알게 모르게 세뇌당한 아이들은 그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책을 읽어본 사람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멋진 신세계'에 담긴 세상이 이렇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되기는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 얘기한 내가 원했던 삶은 소설 속에서의 '베타'그룹 정도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그리는 세상은 강제된 세상이 아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원하는 아니면 원했던 세상이며,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자기 그룹 안에서 불만이 없다.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는 모두 해결되고, 의식주는 물론 성까지 풍부하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만인(책의 표현) 존의 등장도 어떤 면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래서 결론은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SF소설이 아니다. 인간과 인류의 핵심을 통찰한 보고서이자, 지금 세상을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표절이 아니고 패러디)이다. 다만 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지음
1931년에 쓰이고, 1932년에 출판된 SF 소설
Chatto & Widus
디스토피아(?)를 그린 고전
(영어로 써진)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에 선정된 것 외에 다수의 컬렉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조지 오웰의 1984와 자주 비교되는 고전 중의 고전
번역본도 다양하게 있고, 내가 읽은 번역본은 소담 출판사에서 안정효 번역으로 2015년에 발매된 것이다. 기대보다는 번역이 매끄러운 편(의도된 것이라고는 하지만)은 아니어서 (가능하다면) 차라리 영문판을 읽는 것을 권장한다.
워낙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번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과 골고루 이야기를 나누면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한 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고전이다. 특히 SF 장르 마니아라면 웬만한 영화 소설에서 보이는 세계관의 원형이 나오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힌트(요즘 말로 떡밥)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한 구절(Act 5, Scene I, II.203-206)에서 따온 것인데, 소설 중간에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이 문명화된 세상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What a wonderful world(by Louis Armstrong): 2분 21초
작사/작곡: Bob Thiele, George David Weiss
1967년 10월 18일 싱글 발매
당시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적이고 정치적인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만든 곡(그럼 건전가요인가?)인데, 처음에는 토니 베네트(Tony Tonnette)에게 부를 것을 의뢰했는데, 거절당하고 결국 루이 암스트롱이 당첨됐다고 한다. 나중에 토니 베네트도 이 곡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차트 1위를 차지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는데, 당시 미국 측 발매사인 abc레코드사 사장이 이 곡을 안 좋아해서 전혀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88년에 '굿모닝 베트남'에 삽입되면서 재발매되어 빌보드 차트에 재등장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굿모닝 베트남'의 시대 배경은 1965년으로 당시에는 이 곡이 발매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곡을 만든 의도에 맞게 매우 낙관적인 희망적인 가사를 담고 있어서, 내가 영화감독이라도 아이러니한 상황에 배경 음악으로 쓰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유혹에 빠진다. 예를 들자면 영화 '신세계'의 잔혹한 장면들에 배경으로 이 노래가 나오는 식. '멋진 신세계' 역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배경으로 가지고 책의 제목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비행 장면, 석양 등등 거의 모든 장면에 어울리는 곡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