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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프롬나드 : 음악 그리고 음주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by 오록

오늘도 우연히 이곳에 당도한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

저번주에 이야기한 대로 오늘은 술과 음악을 연결해보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술이 있죠. 그리고 술이라는 액체는 지역마다, 혹은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마다 즐겨 마시는 종류가 다를 것입니다. 아마 오늘 글에서 모든 종류의 술과 음악의 페어링을 한다면 읽는 여러분들도, 쓰는 저희도 힘들겠죠. 그래서 오늘은 저희의 기억 속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준 4가지 종류의 술을 골라서 음악과 페어링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넷은 대학시절 항상 어울려 다니며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취기가 올랐을 때의 대화주제는 항상 음악이었죠. 각자 돌아가면서 이 술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고 각자 감지한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즐거운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여러분들께 글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시켜드리려고 해요. 그럼 이제부터 저희가 고른 4가지의 술, 그리고 음악을 연결해 보시죠.


고량주 #우리들의 청춘(靑春)

https://youtu.be/MXUKC6_Hg6w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즉 인생의 젊은 시절을 의미하는 청춘이라는 단어와 고량주의 조합은 상상도 못 하셨을 거예요. 오늘은 전문적으로 음악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상상도 못 할 조합의 청춘을 겪은 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은 술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대학 생활 동안 술을 마신 날이 안 마신 날보다 더 많을 정도로 다양한 술을 경험했는데요. 특히, 귄록루와 함께 ‘술동굴’이라 불리던 록의 자취방에서 자주 어울렸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술만 마신다고 붙은 별명이죠..

그곳에서 여러 술을 마셔봤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조합은 심야 중국집 음식과 중국 고량주, 속칭 ‘빼갈’이었습니다. 처음엔 높은 도수가 부담스러웠지만, 예상외로 향이 좋고 목 넘김이 깔끔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술을 마실 때 항상 음악을 틀곤 했습니다. 귄과 록이 밴드 음악을 좋아한 덕분에, 밴드에 관심이 없던 저도 자연스레 그 세계에 빠져들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밴드는 ‘쏜애플’이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좋아하지 않던 저에게 귄과 록은 늘 쏜애플을 추천했습니다. 처음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낯설었지만, 어느 날 록이 “이 곡의 제목을 한자로 바꾸면 ‘청춘’이야.”라며 들려준 시퍼런 봄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강렬한 기타 리프와 화려한 세션 사운드, 그리고 청춘의 암울함과 응원을 담은 가사가 절로 머리를 흔들게 만들었죠. 그렇게 저는 시퍼런 봄과 2월을 시작으로 쏜애플의 팬이 되었습니다.

술도, 밴드 음악도 대학에 와서 처음 접했지만, 어느새 제 청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선곡은 단순히 고량주와 어울려서가 아니라, 저의 대학 시절과 취향을 소개하고 싶어서 골랐어요. 신나는 음악도, 술도 젊을 때 많이 즐겨봐야 하지 않겠어요? ㅎ.ㅎ


맥주 #바닷가에서 하루의 마무리

https://youtu.be/nZqwQCLYgjk

3월을 마무리하는 현재, 저에게는 이성적으로 제 잘못을 짚어보고 차분하게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일을 겪으면서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려면 냉철해질 필요성을 느끼고 있죠.


운 좋게도 저는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머리에 과부하가 오면 과열상태를 식히기 위해 맥주 한두 캔을 손에 쥐고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는 편입니다.

맥주를 들고 산책을 할 때면 신나고 텐션이 오르는 노래보다는 차분한 노래를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맥주와 페어링할 곡은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에서 지분율이 상당히 높은 Wave to Earth라는 밴드의 'Seasons'라는 곡입니다.

웨이브 투 어스라는 밴드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 볼까요. 이 밴드를 한 줄로 정의하자면 락을 기반으로 Lo-fi를 첨가한 음악을 하는, 가장 값싸게 가장 진한 분위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밴드인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도 가사를 영어로 이야기해서 어? 외국 밴드인가? 싶겠지만 의외로 한국인 3명으로 구성된 한국의 자랑스러운 밴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악기의 톤을 치명적으로 잘 잡는 밴드라고 생각해요. 자세히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꼭 찾아들으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웨이브 투 어스의 톤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Seasons'라는 노래는 항상 제 산책을 마무리해 주는 곡입니다. 이 노래는 자신을 하찮은 사람이라고 폄하하는 한 남자의 짝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첫 가사부터 'I can't be your love'라고 못을 박아버리죠. 그렇지만 내가 '너의 사계절이 되어서 널 지켜줄게'라는 소극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입니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과 어느 정도 무드가 맞는 곡이라 그런지 항상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이 노래를 듣게 되네요.

저는 항상 제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본받을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아니죠. 그렇지만 적어도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힘들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은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힘들었던 이유도 어쩌면 이 소망을 실현하고 싶지만 난 하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이 움직이고 생각하면서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한계를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모두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들으며 맥주를 한 캔 할 때 추천할만한 안주를 알려드릴까 해요. 제가 추천하는 안주는 '그날의 감정'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맥주의 청량함과 쌉싸름함을 느끼면서 오늘 느낀 안 좋은 감정들을 받아들인 후 털어버리면 다음 날에는 감정이 희석돼서 더 좋은 하루를 보낼지도 몰라요.


위스키 #Idle Moments, 선택을 곱씹는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aq0m0hbCjFQ&list=PLc-pqxq137OBs6dEEtWSe4zLYM_k1Y5VI&index=34

태양이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저 멀리 쉬러 가고, 달빛이 조용히 세상을 감싸는 저녁입니다. 누군가는 집에서, 또 누군가는 친구들과 하루를 마무리하며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선물하고 있겠지요. 만약 누군가 제게 지금 이 순간, 휴식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와 단 한 잔의 술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조합을 고르겠습니다.

오늘의 추천곡은 Grant Green의 Idle Moments, 그리고 음악에 곁들일 술은 위스키입니다. 사실 저 역시 위스키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쌉싸래한 향과 알싸한 맛이 낯설었지만 어느 날 우연히 깊은 음악과 함께 마셨을 때 그 진가를 알게 되었죠. 감미롭지만 묵직한 여운이 남는 그 한 잔이 마치 그날의 Idle Moments처럼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반복 구성이 의도치 않은 최고의 감동을 만들어 낸 명곡 중의 명곡입니다. 원래 이 곡의 주제 멜로디는 한 번만 연주될 예정이었지만, Grant Green은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두 번 연주했습니다. 이에 다른 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두 배 길이의 솔로 연주를 이어갔죠.

녹음이 끝난 후, 프로듀서 Alfred Lion은 결과에 만족했지만, 당시 관행에 따라 곡의 길이를 7분으로 맞추기 위해 재녹음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연주자들과 프로듀서 모두 첫 번째 녹음이 훨씬 더 감동적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결국 그 버전 그대로 발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단 한 번의 선택이 곡의 가치를 완전히 바꿔 놓은 셈이죠.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어떤 말을 내뱉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며 길을 만들어 갑니다. 그 선택이 때로는 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실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그 선택 위에 또 다른 선택을 쌓으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전의 선택이 후회스럽다면, 오늘 밤 위스키 한 잔과 함께 잠시 그 선택을 곱씹어 보내주는 건 어떨까요?


저도 처음 위스키를 접했을 때는 그 진한 풍미가 쉽지 않았지만, 어느 날 그 쓴맛 속에서 오히려 위안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위스키는 저에게 고단한 하루를 달래 주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천천히 잔을 기울이며 지나간 선택을 마음속에서 흘려보내고, 내일은 더 가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스스로 다독여 보세요.

우리 삶의 Idle Moments도 그 순간만큼은 빛나는 크리스탈 같은 순간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소주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

https://youtu.be/bBb8ZhVxqTc

저는 군인 신분이라 요즘은 술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있을 때는 술을 좋아했어요. 에탄올이 섞인 액체를 몸에 들이붓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좋은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았죠. 혼자 술을 마실 때도 우울해지지 않으려 밝은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특히 시티팝을 좋아했어요.

도시는 겉으론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고단한 삶과 개인의 고충이 존재합니다. 시티팝은 그런 도시의 이면을 담아낸, 찬란하면서도 어딘가 외로운 네온사인 같은 감성을 음악으로 풀어낸 장르죠.

오늘 소주와 함께 추천할 노래는 Will Rise의 이 밤입니다. 정통 시티팝은 아니지만 뉴트로 감성을 담아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곡입니다. 저는 특히 은은하게 흐르는 신디사이저와 일렉피아노 소리에 매료되었어요. 마치 불 꺼진 방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 같아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따뜻한 가사도 소주와 잘 어울립니다. 혼술을 즐긴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한 잔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요즘 세상은 모두에게 힘든 시기입니다. 청년 실업, 저출산, 자살률 증가, 사회적 갈등… 그 외에도 각자의 이유로 버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사회가 돌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감정은 무작위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움직입니다. 끝없이 우하향하지도, 끝없이 우상향 하지도 않죠.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면, 그 옆에 조금 덜 힘든 사람이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요?”
“둘 다 힘들면요?”

그래서 인류는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왔습니다. 최초의 음악이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것처럼요.

제목에 쓴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의 큰 사랑도,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도 아닙니다. 인류를 향한, 인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개인이 먼저 안정을 찾아야 합니다. 안정을 찾은 사람은 사랑을 줄 수 있죠. 제 기준으로 안정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입니다.
여러분도 이곳 귄록루역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이유를 묻지 않고, 사랑이 이유가 되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커다란 하늘을
혼자 짊어지기가
버거울 때면
아무런 말도
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받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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